임태선 — 순박한 사람이라며 빼돌린 형사

1950 7월 · 경북 영천 임고면

경북 영천은 낙동강 방어선 안쪽이었다. 인민군이 끝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그 지역 보도연맹원들에게는 오히려 나쁜 조건이 됐다. 전선이 지나가 버린 곳에서는 학살할 시간이 없었지만, 후방으로 남은 지역에서는 예비검속이 늦게 시작돼 오래 이어졌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인민군에게 점령되지 않은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이유다.

1950년 7월, 영천경찰서는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소환해 농협창고에 가둔 다음 안약골 등에서 살해했다. 영천의 추정 희생자는 500명에서 1,000명 사이다.

그 안에서 임고면 수성동과 사동 마을 사람들만 다른 결과를 얻었다. 영천경찰서 형사 임태선 때문이었다.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짧다. 임고면과는 아무 연고가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고 있었다는 것, 잡혀온 보도연맹원들을 순박한 사람이다 라면서 빼돌리거나 눈치를 보아 풀어주었다는 것 정도다.

눈치를 보아 풀어주었다는 표현이 그해 여름 지역 경찰의 처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사람은 이 시리즈에서도 문형순과 안종삼 둘 정도다. 나머지는 대부분 틈을 이용했다. 서류를 늦추고, 말을 흐리고, 밤에 열어 주고, 도망갔다고 보고했다.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형사라는 직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서장이나 서장은 결정 권한이 있지만 그만큼 책임도 정면으로 온다. 형사는 결정권이 없는 대신 사람을 개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이 등급은 좀 아닌 것 같다며 명단에서 빼거나, 조사가 끝났다며 내보내는 일이 실무자 선에서 가능했다.

그러니까 사슬을 끊는 방법은 자리마다 달랐다. 서장은 명령서를 돌려보냈고, 지서장은 창고 문을 열었고, 형사는 한 사람씩 빼돌렸고, 양조장 주인은 술을 먹였다.

임태선이 살린 사람이 몇 명인지,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사보고서 612쪽에서 613쪽 사이에 몇 줄로만 남아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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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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