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 살린 일이 다시 살리는 일이 된 천안

1950 7월 · 충남 천안경찰서

충남 천안에는 그해 여름 이후에 다른 지역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인민군에 의한 우익 인사 희생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사람의 판단에 닿는다. 당시 천안경찰서장 김종대는 후퇴할 때 예비검속해 두었던 보도연맹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다가 전부 풀어주고 떠났다.

그 결과가 두 번 나타났다.

첫 번째는 인민군 점령기다. 풀려난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서 우익 인사에 대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인민군이 물러날 때다. 서천과 보령 등에서는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보복 차원으로 우익 인사들을 많이 죽였다. 그런데 천안에서는 저들도 살려주었는데 우리도 살려주자는 말이 나왔고,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래서 천안 지역에는 좌우익 어느 쪽에 의한 대학살도 없었다.

이 이야기가 이 시리즈에서 갖는 자리는 조금 특별하다. 다른 편들이 한 사람이 몇십 명 혹은 몇백 명을 살린 이야기라면, 이 편은 살린 일이 지역 전체의 다음 선택을 바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의 상당 부분은 보복의 연쇄였다. 보도연맹원을 죽인 자리에 인민군이 들어와 우익을 죽이고, 수복 후에 다시 부역 혐의자를 죽였다. 한 마을에서 좌우 양쪽에 의해 수만 명이 학살당한 곳도 있다. 김동춘 교수는 인민군이나 좌익에 의한 희생자를 전체적으로 5만에서 7만 정도로 추정하면서, 군경과 우익에 의한 학살 규모가 그보다 훨씬 컸다고 정리한 바 있다.

이 연쇄를 어디선가 끊으면 그 뒤가 달라진다는 것을 천안 사례가 보여준다. 다만 이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읽으면 곤란하다.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 연쇄가 끊기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종대 서장 본인의 이후 행적은 조사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가 풀어준 사람이 몇 명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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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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