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초, 괴산경찰서는 관내 지서들에 보도연맹원을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불정지서도 지시에 따라 예비 검속자들을 연행했다.
그런데 불정지서 주임 황대흥은 연행해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선이 좋지 않으니 몸을 피하라.
그 한마디로 대다수가 목숨을 구했다.
여기까지가 이 편의 앞부분이고, 뒷부분이 이 시리즈에서 반드시 함께 적어야 할 대목이다.
CIC가 2차로 소집한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은 감물면 백양리 공동묘지에서 희생됐다.
지서 하나가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지서로 내려온 명령까지였다. CIC는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으로 경찰 계통 밖에서 움직였고, 자기 명단으로 자기 손으로 연행했다. 김해 한림에서 최대성이 지서 단계의 사람을 모두 살려냈는데도 CIC가 직접 데려간 4명은 죽은 것과 같은 구조다.
그러니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조심해야 할 오해가 하나 있다. 지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관내 사람들을 다 지킬 수 있었다는 오해다. 그렇지 않았다. 그해 여름의 예비검속에는 경찰 사찰계, 육군 CIC, 헌병, 해군 정보참모실, 공군 정보처, 우익 청년단체까지 여러 계통이 동시에 움직였다. 하나를 막아도 다른 하나가 왔다.
황대흥이 한 일의 크기는 그래서 정확히 이렇게 적어야 한다. 그는 첫 번째 그물에서 사람들을 빼냈다. 두 번째 그물이 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그물에 걸린 이들의 이름은 지금도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다. 백양리 공동묘지에서 몇 명이 희생됐는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는 정확히 적지 못했다. 충북 괴산은 추정 희생자 수가 200명에서 300명 사이인 열두 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있다.
황대흥 본인이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자료에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