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식 — 부모산에 나무 심으러 갑시다

1950 7월 · 충북 청주 강서지서 · 부모산

1950년 7월 9일, 충북 청원군에서 보도연맹원들이 강서지서로 소집됐다. 자료에 따라 소집 인원은 약 500명, 또는 강서면 보도연맹원 50명으로 적힌다. 같은 날의 다른 층위일 수도 있어 여기서는 두 숫자를 그대로 둔다.

강서지서장 남정식 경위는 경찰의 본분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끝에 이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다만 그냥 집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 여름에 그냥 가라는 말이 어떻게 오해될 수 있는지를 그가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가 택한 방법은 훨씬 안전했다.

부모산에 나무 심으러 갑시다.

부모산은 해발 231미터의 야트막한 산이다. 그는 나무와 삽과 괭이를 챙겨 앞장섰고, 소집된 사람들이 따라 올라갔다. 나무 심기는 한나절 만에 끝났다. 작업이 끝나자 그가 인사했다. 오늘 하루 고생했습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사람들은 자기가 죽음의 땅에서 살아 나온 줄도 모르고 집으로 갔다. 그것을 안 것은 여름 난리에 피난을 갔다가 수복된 뒤였다. 인근 오창면, 옥산면, 강내면의 보도연맹원들이 싹쓸이하듯 집단학살당한 사실을 그때 알았기 때문이다. 강서면 보도연맹 책임자였던 이상덕도 그 하루 덕에 살았다.

이상덕의 아버지가 수복 후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남아 있다. 쌀 세 마차 분량을 강서지서로 보냈다. 남정식은 단호히 거절하고 쌀을 돌려보냈다. 2007년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을 모두 알고 있던 순박한 사람들을 죽게 놔둘 수 없었다.

이 문장이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아 여기 적어 둔다. 사상도 아니고 용기도 아니고, 아는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면 단위 지서에서 근무하는 경찰에게 관내 사람들은 명부의 이름이 아니라 얼굴이었다. 반대로 CIC나 헌병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조직에는 그들이 이름과 등급일 뿐이었다. 이 시리즈에 지서장과 면장이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같은 청원군 안에서 벌어진 일도 함께 적는다. 고은리 분터골과 아치실에서는 청주경찰서 경찰과 헌병대, 청주 CIC가 보도연맹원들을 살해했다. 청주 지역의 인구 대비 희생자 비율은 조사된 곳 가운데 가장 높은 축이었다. 부모산의 하루는 그 한복판에 있던 예외였다.

1997년 주민들이 그의 공덕비를 세우려 준비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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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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