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성 — 이 사람들은 대부분 까막눈이오

1950 7월 · 경남 김해 한림면 금융조합창고

김해 한림면장 최대성이 남긴 말은 짧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까막눈이오. 전쟁이 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을 때 곡식을 준다고 속여서 가입시킨 것입니다. 억울한 양민이 많소.

이 한 문장이 국민보도연맹이라는 조직의 정체를 그 시절 현장의 언어로 요약한다. 1949년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좌익 전력이 있어도 전향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곡식과 비료와 고무신을 준다는 말에 도장을 찍거나 지서 순경의 할당량을 채우느라 이름이 올라간 농민이 많았다. 면장이라면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명부를 만든 것이 결국 면과 지서였기 때문이다.

1950년 여름, 한림면 보도연맹원들이 면내 금융조합 창고에 갇혔다. 대한청년단원들과 한림지서 경찰들이 이들을 처리하려 했다. 최대성은 위와 같이 말하며 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이 쉽게 응하지 않자 그는 한 사람을 더 끌어들였다. 당시 한림면 대한청년단장을 맡고 있던 동생 최대흥이다. 우익 청년단의 단장이 나서서 다시 설득하자 상황이 움직였다.

그다음이 이 사람의 방식이다. 창고에 갇힌 이들 가운데 젊은 사람은 모조리 대한청년단에 가입시켜 빼냈다. 우익 단체 명부에 이름을 올려 보도연맹 명부를 덮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 청년단에 넣기 어려운 사람들은 창고 뒷문으로 내보냈다. 서류로 한 번, 뒷문으로 한 번, 두 갈래로 사람을 뺐다.

결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김해 전역에서 확인한 희생자는 272명인데, 그 가운데 한림면 거주자는 단 4명이었다. 그리고 그 4명은 모두 지서가 아니라 CIC가 직접 연행해 간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지서 단계에서 걸러진 사람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인근 진영·생림·상동·진례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김해군 전체에서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993명 가운데 최소 750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은 뒤 묘비명에도 새겨졌다. 김해 지역 유림 이우섭이 쓴 글이다. 그리고 2024년, 한림면민들을 중심으로 최대성 추모사업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일이 있고 74년 만이다.

기억해 둘 것이 하나 있다. 최대성은 경찰이 아니라 행정관이었다. 명부를 만드는 쪽이 명부를 무력화하는 데 나섰다는 뜻이다. 이 시리즈에서 면장이 주인공인 편은 그와 합천 가회의 허임상 둘뿐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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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을 살린 사람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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