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지배층과 수도를 따라 다시 짜입니다.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고, 사람들이 위세 있는 말을 따라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식 영어가 더 지적으로 들리고, 지방 사람이 서울에 오래 살면 사투리를 덜 쓰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더 높이 쳐주는 말을 언어학에서는 「위세(prestige)가 있는 말」이라 부릅니다.
우리말의 큰 줄기도 그렇게 흘렀습니다. 나라의 중심이 경주에서 개경으로, 다시 한양으로 옮겨 가는 동안, 국어학계는 지금 한국어의 뿌리를 신라말에서 개경말(고려)을 거쳐 서울말(조선)로 이어진 것으로 봅니다. 고구려·백제의 말은 그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지명과 방언의 흔적으로만 남았다고 봅니다. 고려 때 송나라 사신 손목이 쓴 『계림유사』(1103)에 고려 말 낱말 350여 개가 한자로 적혀 있는데, 이것도 서울인 개경의 말입니다. 중심의 말이 가장 많이 이어지고 가장 많이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중심의 말은 가장 널리 이어지지만, 옛 모습은 오히려 빨리 잃습니다. 사람과 물건과 새 낱말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방언학에는 「새 모양은 중심에서 퍼져 나가고, 옛 모양은 가장자리에 남는다」는 오래된 관찰이 있습니다. 우리 사투리가 그 증거입니다.
경상도 사람이 「더버」, 「가붑다」라 하는 것은 한글이 만들어질 무렵 있던 소리 「ㅸ」(순경음 비읍,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는 소리)의 흔적입니다. 서울말에서는 이 소리가 「더워」, 「가볍다」처럼 바뀌었지만 경상도와 전라도 일부에는 「ㅂ」으로 남았습니다. 가을을 「가실」, 마을을 「마실」이라 하는 것도 사라진 소리 「ㅿ」(반치음)이 「ㅅ」으로 남은 흔적입니다. 15세기 책에 점을 찍어 표시한 말의 높낮이(성조)는 서울말에서는 사라졌지만 경상도 말의 억양에 이어져 있다고 봅니다.
가장 뚜렷한 곳이 제주입니다. 제주어에는 「아래아(ㆍ)」의 소리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섬이라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2010년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올렸고, 제주어를 따로 된 말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어에 남은 아래아는 제주만의 소리가 아니라 15세기 무렵 육지의 중심어에 있던 소리입니다. 섬이 늦게까지 지킨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중심어의 원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남은 자리가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였다. 제주어에는 고려 말 원나라가 말 목장을 두던 시절 들어온 몽골말도 섞여 있습니다. 가장자리도 고여만 있던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오래 지킨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영국 표준 발음은 r 소리를 흘리지만 17세기 영국 영어는 r을 굴렸고, 그 모습은 오히려 대서양 건너 미국 영어에 남았습니다. 북유럽의 변두리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말은 옛 노르드어에 가장 가깝습니다.
두 관찰은 부딪치지 않습니다. 중심의 말은 이어지고 퍼지며 표준이 되고, 옛 소리는 가장자리가 품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사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도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저마다의 모양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장자리의 말을 녹음해 둔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