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 삼천 명을 데리고 돌아온 승려

1605 4월 · 금강산 · 일본 교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승려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건너가 담판을 짓고 왔다.

승병

1544년에 태어났다. 속명은 임응규, 법명은 유정이고 호가 사명당이다.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다. 1592년 전쟁이 나자 스승의 호소에 따라 승려들을 모았다.

금강산에서 시작해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여했고, 뒤에 영남 일대에서 활동했다.

승려가 무기를 드는 것은 계율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나선 것을 두고 당시 불교계 안에서도 논의가 있었다.

적장과 마주 앉다

1594년, 그는 울산 서생포의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갔다. 가토 기요마사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네 차례에 걸쳐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때 오간 말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있다. 가토가 조선에 보배가 있느냐고 묻자, 사명당이 조선의 보배는 당신의 머리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은 후대 기록에서 자세해지는 것이라 그대로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적진에 들어가 여러 차례 협상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으로

전쟁이 끝나고 1604년, 그는 조정의 명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예순한 살이었다. 국교를 다시 여는 문제와 붙잡혀 간 사람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났다.

그리고 1605년, 조선인 포로 삼천 명 남짓을 데리고 돌아왔다.

전쟁으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이렇게 돌아왔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도술 이야기

이 사람에게 붙은 이야기는 유독 많다.

일본에서 그를 시험하려고 쇠로 만든 방에 가두고 불을 지폈는데, 문을 열어보니 그가 앉은 자리에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

말을 타고 물 위를 건넜다는 이야기, 부채를 부쳐 비를 오게 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나온 소설 『임진록』 계열에서 온 것이다. 실제 기록이 아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붙었을까. 전쟁에서 진 나라의 사람들이 이야기 속에서라도 이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가 한 일은 도술이 아니었다. 적진에 걸어 들어가 마주 앉는 일, 바다를 건너가 협상하는 일이었다.

그 편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는 1610년 해인사에서 죽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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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