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예언으로 가장 유명한 이름이다. 그런데 그 유명세의 근거가 되는 책은 그가 쓴 것이 아니다.
실제 남사고
1509년에 태어나 1571년에 죽었다. 경상도 울진 사람이다. 호는 격암이다.
천문과 역학과 풍수에 밝았고, 만년에 천문을 담당하는 관상감의 하위 관직을 지냈다. 벼슬은 높지 않았다.
그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집과 야담에 흩어져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등이다.
전하는 예언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붕당에 대한 예언이다.
그가 한양의 산세를 보고, 앞으로 조정이 동과 서로 갈라질 것이라 말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575년에 동인과 서인이 갈라진다. 그가 죽은 지 4년 뒤다.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묏자리를 아홉 번이나 옮겼다는 이야기, 결국 좋은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가 죽은 뒤에 기록되었다. 예언이 맞았다는 이야기가 사건이 일어난 뒤에 정리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격암유록
문제는 이 책이다.
『격암유록』은 남사고가 지었다는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미래를 암호처럼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여러 차례 화제가 되었고 지금도 인용된다.
그런데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세기다. 필사본이 나타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사본이 근거로 제시된다.
학계는 이 책을 남사고의 저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조선 시대 문헌에 이 책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남사고와 동시대 사람들의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책 안에 근대 이후에나 쓰일 수 있는 표현과 개념이 들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종교 단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사고가 죽은 지 수백 년 뒤에 만들어져 그의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한 번
앞서 고려 편에서 도선을 보았다. 실존 인물인데 그의 이름을 단 예언서가 천 년 동안 쏟아졌다.
남사고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다.
예언자로 이름난 사람의 이름은 그 자체로 값이 있다. 무언가를 예언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이름 대신 그 이름을 쓴다.
그래서 정작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는 점점 알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