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도교 수련으로 이름난 사람을 꼽으면 반드시 들어가는 이름이다. 호는 북창이다.
1506년에 태어나 1549년에 죽었다. 마흔넷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기이한 쪽이다.
어려서부터 천문과 의학과 음악과 산수에 두루 통했다고 한다. 배우지 않은 외국 말을 알아들었다는 이야기, 새와 짐승의 소리를 알아들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문집에 실려 있다.
중국에 갔을 때 여러 나라 사신들과 각자의 말로 대화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가 죽은 뒤 문인들의 기록에 실린 것이라 검증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관상감과 혜민서에서 교수를 지낸 것은 사실이다. 천문과 의학을 다루는 관청이다.
용호비결
그가 남긴 것으로 전하는 『용호비결』은 조선 도교 수련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내용은 간결하다. 호흡을 고르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신비한 술법이 아니라 몸을 다스리는 방법에 가깝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도교 수련서들이 말이 많고 어려워 배우려는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니, 가장 요긴한 것만 적는다는 취지였다.
아버지
이 사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버지다.
그의 아버지 정순붕은 1545년 을사사화 때 윤원형 쪽에 서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그 공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정렴은 아버지를 여러 차례 말렸다고 전한다. 듣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집안이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기에 아들은 산으로 갔다.
스스로 쓴 만장
마흔넷에 죽으면서 그는 자기 만장을 직접 지었다. 만장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이다.
남은 구절은 이런 내용이다. 한평생 만 권의 책을 읽었고 하루에 천 잔의 술을 마셨다. 복희씨 이전의 일이나 말했지 세상 이야기는 입에 담은 적 없다.
그리고 죽을 날을 미리 알고 그날에 맞춰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이 대목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자기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자기가 미리 써두었다는 것 자체는 특이한 일이다.
동생 정작도 의학으로 이름이 났고, 『동의보감』 편찬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