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본다. 그 토정이 이 사람이다.
그런데 이지함은 『토정비결』을 쓰지 않았다.
토정이라는 호
1517년에 태어나 1578년에 죽었다. 한산 이씨로,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서울 마포 강가에 흙으로 지은 집에 살았다. 그 위를 평평하게 해 정자처럼 썼다고 한다. 그래서 호가 토정(土亭)이다.
명문가 출신이면서 흙집에 살았다는 것부터가 이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
무엇을 주장했나
그는 서경덕에게 배웠다. 성리학의 주류에서 조금 비껴 있는 계통이다.
그가 실제로 주장한 것은 점술이 아니라 경제다.
농사만으로는 백성이 살 수 없으니 상업과 수공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굽고 광산을 개발해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조선에서 이런 주장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상업을 말단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그는 직접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해보기도 했고, 그렇게 얻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전한다.
걸인청
쉰이 넘어 벼슬길에 나왔다. 포천현감과 아산현감을 지냈다.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그가 한 일이 걸인청이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먹이고 재우면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짚신을 삼게 하고 그것을 팔아 스스로 먹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구호가 아니라 자립을 목표로 삼은 셈이다.
그는 아산현감으로 있던 그해에 죽었다.
토정비결은 어디서 왔나
『토정비결』이 널리 유행한 것은 19세기 이후다.
이지함이 지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어떤 기록에도 그가 그런 책을 썼다는 언급이 없다.
왜 그의 이름이 붙었을까. 그가 생전에 사람의 앞일을 잘 맞혔다는 이야기가 여럿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화들이 문집에 실려 있다.
앞 편의 남사고와 같은 구조다. 예언으로 이름난 사람의 이름에 책이 붙는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다. 남사고의 경우 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흐려졌다. 이지함의 경우는 그가 실제로 한 일 자체가 잊혔다.
상업을 일으키자고 하고 걸인청을 만든 사람이, 지금은 새해 운세를 보는 책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