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선 —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아낸 사람

1380 8월 · 진포(군산) · 개경

고려 말, 왜구가 극심했다. 해안만이 아니라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노략질했다. 조정이 손을 쓰지 못했다.

최무선은 이 문제의 답이 화약에 있다고 보았다.

알려주지 않는 기술

화약은 중국에서 이미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제조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특히 염초를 만드는 방법이 핵심이었다.

염초는 흙에서 추출한다. 오래된 집의 마루 밑이나 아궁이 주변 흙처럼 특정한 조건의 흙을 모아 물에 우려내고 졸여서 결정을 얻는다. 그 과정을 모르면 화약을 만들 수 없다.

최무선은 중국에서 온 상인들에게 계속 물었다. 그러다 이원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고려사는 그가 이원을 자기 집에 데려다 극진히 대접하며 물어 그 방법을 알아냈다고 적었다.

조정을 설득하다

방법을 알아낸 뒤에도 시간이 걸렸다.

그는 화약과 화기를 만드는 관청을 두자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조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는 기록도 있다.

1377년, 마침내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그가 제조를 맡았다.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 대장군포, 이장군포, 화전, 신포, 화통 같은 화기들이다. 종류가 스무 가지 가까이 기록에 남아 있다.

진포

1380년, 왜선 오백 척이 진포에 몰려왔다. 배를 서로 밧줄로 묶어 놓고 사람들은 육지로 올라가 노략질을 했다.

최무선이 나세, 심덕부와 함께 배를 이끌고 갔다. 그리고 화포를 쏘았다.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탔다. 오백 척이 불탔다.

육지에 올라가 있던 왜구들은 돌아갈 배를 잃었다. 그들이 내륙으로 도망치다 이성계와 마주친 것이 그해의 황산 전투다.

화포를 배에 실어 해전에서 쓴 것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이른 사례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백 년 뒤

최무선은 1395년에 죽었다. 죽기 전 아들 최해산에게 자신이 쓴 『화약수련법』이라는 책을 남겼다. 아이가 자라면 주라고 아내에게 맡겼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있다.

최해산은 그 책으로 아버지의 기술을 이었고 조선의 화기 개발을 맡았다.

그리고 이백 년 뒤, 조선의 배들이 화포를 싣고 왜선과 맞붙는다. 한 사람이 중국 상인을 붙잡고 물어서 알아낸 기술이 그렇게 이어졌다.

남는 대목

이 사람의 이야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발명이 아니라 집요함이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남이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알아낸 뒤에도 조정을 설득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기술을 얻는 일보다 그 기술을 쓰게 만드는 일이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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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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