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 —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랴

1198 5월 · 개경 북산

1198년,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개경 북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다른 집 노비 여섯이 함께 있었다. 만적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한 말

고려사에 실린 그의 말은 이렇다.

나라에서 경인년과 계사년 이래로 높은 벼슬이 천한 무리에서 많이 나왔다. 장수와 재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하며 채찍 아래에서 고통받아야 하는가.

경인년은 무신정변이 일어난 1170년이고 계사년은 1173년이다. 앞 편에서 본 이의민이 바로 그 사례였다.

노비가 자기 처지를 두고 한 말이 이렇게 또렷하게 기록에 남은 경우는 우리 역사에서 드물다.

계획

그들은 계획을 세웠다.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오려 정(丁)자를 새기고 그것을 표식으로 삼기로 했다.

날짜를 정해 흥국사 마당에 모인 뒤, 안에서 궁궐의 노비들이 호응하게 하고, 각자 자기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우기로 했다.

그러면 이 나라에 천인이 없어질 것이고, 공경장상을 우리가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너진 이유

약속한 날에 모인 사람이 수백 명에 그쳤다. 일을 하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날짜를 미루고 다시 모이기로 했다.

그 사이에 한충유라는 사람의 집 노비 순정이 주인에게 이 일을 알렸다. 한충유가 최충헌에게 고했다.

만적을 비롯한 100여 명이 붙잡혔다. 모두 강물에 던져졌다.

밀고한 순정에게는 은 여든 냥이 상으로 주어졌고 양인 신분이 되었다.

무엇이 남았나

이 봉기는 실행되지 못했다. 모의 단계에서 끝났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오래 기억되는 것은 그 말 때문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는 문장은 이 나라에서 신분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 가장 이른 발언 가운데 하나로 다뤄진다.

비슷한 말이 중국 진나라 말 진승의 봉기에도 나온다. 만적이 그 문구를 알고 썼는지, 아니면 그 기록을 정리한 사람이 익숙한 표현으로 옮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앞부분은 다르다. 경인년 이래 천한 무리에서 높은 벼슬이 많이 나왔다는 대목은 고려의 상황이다. 남의 나라 문구로는 나올 수 없는 관찰이다.

한 가지 더 짚어둘 것이 있다. 이 사건에서 이름이 남은 노비는 둘이다. 만적과 순정이다.

한 사람은 강에 던져졌고 한 사람은 상을 받고 양인이 되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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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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