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시조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다.
앞 편에서 본 것은 김해 쪽 이야기다. 구지봉에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오고 여섯 알에서 여섯 아이가 나온다는 「가락국기」의 서술이다.
그런데 고령 쪽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산신이 낳은 두 아들
조선 시대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조에 실린 이야기다. 최치원이 지은 「석리정전」이라는 글을 인용했다고 밝혀두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해 두 아들을 낳았다. 하나는 뇌질주일이고 하나는 뇌질청예다.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뇌질청예는 금관국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
뇌질주일은 아버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났고, 뇌질청예는 어머니를 닮았다고 적혀 있다.
두 이야기의 차이
같은 가야인데 시작이 다르다.
김해 쪽 이야기에서는 수로가 여섯 중 첫째다. 고령 쪽 이야기에서는 대가야의 시조가 형이고 수로가 아우다.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가야는 오랫동안 김해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5세기 이후 금관가야가 약해지고 고령의 대가야가 연맹의 중심이 된다. 그 시기에 대가야 쪽에서 자기네가 형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었거나 정리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시조 신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그 시점의 힘의 배치를 담는다. 같은 지역에 시조 이야기가 두 개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료다.
이진아시는 누구인가
삼국사기 지리지는 대가야에 대해 짧게 적었다. 시조 이진아시왕부터 도설지왕까지 모두 열여섯 왕에 520년이라고.
그런데 그 열여섯 왕 가운데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것은 몇 되지 않는다. 처음의 이진아시와 마지막의 도설지, 그리고 중간의 몇 사람뿐이다.
오백 년을 이어간 나라의 왕 계보가 이 정도로만 남았다.
무덤은 남았다
기록은 적은데 무덤은 크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는 수백 기의 무덤이 있다. 그 가운데 44호분에서는 순장된 사람의 흔적이 다수 확인되었다. 한 사람의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은 것이다.
대가야가 상당한 규모의 권력을 가진 나라였다는 것을 이 무덤들이 말해준다. 문헌은 침묵하는데 땅이 말하는 셈이다.
가야 고분군은 2023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