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악사다. 그가 만든 악기가 가야금이고, 그가 지은 곡의 제목들이 가야 여러 나라의 이름이다.
왕의 뜻
가야의 가실왕이 열두 줄 현악기를 만들고 우륵에게 명해 곡을 짓게 했다. 삼국사기 악지는 왕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여러 나라의 말이 각기 다른데 어찌 소리가 하나일 수 있겠는가.
우륵이 지은 곡은 열두 편이었다. 그 제목들이 삼국사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 달이, 사물, 물혜, 하기물, 사자기, 거열, 사팔혜, 이사, 상기물.
대부분 지명이다. 가야 연맹에 속한 여러 나라의 이름이거나 그 일대의 땅 이름으로 본다.
그러니까 이 열두 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여러 나라의 소리를 한 악기 위에 모으는 일이었다. 여섯 알에서 시작해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한 가야가, 음악으로라도 하나가 되어보려 한 마지막 시도였을 수 있다.
악기를 들고 넘어가다
가야는 결국 무너지고 있었다. 우륵은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기를 들고 신라로 넘어갔다.
진흥왕이 그를 받아들여 국원, 지금의 충주에 살게 했다. 그리고 계고와 법지와 만덕 세 사람을 보내 그 음악을 배우게 했다.
세 사람은 열두 곡을 다 배운 뒤 서로 말했다. 이 곡은 번거롭고 음란해 바르다 할 수 없다. 그리고 다섯 곡으로 줄였다.
우륵이 그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노했다. 그런데 그들이 연주하는 것을 다 듣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즐거우면서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
신라 조정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신하들이 가야는 망한 나라인데 그 음악을 어찌 취하겠느냐고 했다. 진흥왕이 답했다. 가야왕이 음란해 스스로 망한 것이지 음악에 무슨 죄가 있는가.
그렇게 가야금은 신라의 악기가 되었다.
제목만 남았다
우륵이 지은 열두 곡은 전하지 않는다. 다섯 곡으로 줄어든 것도 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제목 열두 개와, 악기 하나와, 눈물을 흘리며 인정했다는 한 문장이다.
그 제목들이 가야 여러 나라의 이름이라는 점은 뜻밖의 쓸모를 낳았다. 기록이 거의 없는 가야 소국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료로 이 곡 목록이 쓰인다. 노래 제목이 사료가 된 것이다.
충주 남한강가에 탄금대가 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자리로 전한다. 뒷날 임진왜란 때 신립이 배수진을 친 곳도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