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는 자기 역사서가 없다. 삼국사기에 가야본기는 없다. 그래서 가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 한 편에서 온다.
그 「가락국기」도 일연이 직접 쓴 것이 아니다. 11세기 후반 금관지주사를 지낸 어떤 사람이 지은 글을 일연이 줄여서 실은 것이다. 사건으로부터 천 년이 지난 시점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구지봉의 노래
서기 42년, 아직 나라가 없고 아홉 우두머리가 백성을 다스리던 때였다.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이자 소리가 물었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아홉 우두머리가 있다고 답하자 소리가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셨다. 너희는 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추어라.
그 노래가 「구지가」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줄이 드리워졌다. 줄 끝에 붉은 보자기로 싼 금합이 있었고, 열어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이튿날 알에서 여섯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온 이를 수로(首露)라 했다. 처음 나타났다는 뜻이다. 여섯이 각각 여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탈해와 겨루다
어느 날 완하국에서 왔다는 탈해가 배를 타고 나타나 왕위를 내놓으라 했다.
수로가 답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해 왕위에 오르게 했으니 함부로 넘길 수 없다.
탈해가 그렇다면 재주로 겨루자고 했다. 수로가 좋다고 했다.
탈해가 매로 변하자 수로는 독수리가 되었다. 탈해가 참새로 변하자 수로는 새매가 되었다. 그때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탈해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항복하며 말했다. 제가 죽음을 면한 것은 성인께서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진 마음 덕분입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떠나 계림 쪽으로 갔다.
앞서 본 석탈해다. 신라의 시조 가운데 하나가 가야에서 왕위를 다투다 지고 신라로 갔다는 이야기가 가야 쪽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읽을까
알에서 나오는 시조 이야기는 고구려에도 신라에도 있다. 그런데 가야만 여섯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섯이 동시에 나왔다는 구조는 가야가 끝까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맞물린다. 가야는 여러 나라의 연합체였고, 그 상태가 시조 신화에 그대로 들어 있다.
수로는 158세까지 살았다고 「가락국기」는 적었다. 199년에 죽었다는 것이다. 김해에 그의 무덤으로 전하는 능이 있고, 조선 시대에 정비되어 지금도 제사가 이어진다.
나라는 사라졌는데 제사는 이천 년째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