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이 즉위한 지 7년째,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시라고 청했다. 왕이 말했다. 내가 여기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이고 왕비를 짝지어 주는 것도 하늘의 명일 테니 그대들은 걱정 말라.
그리고 신하 유천간을 망산도로 보내 기다리게 했다.
붉은 돛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붉은 깃발을 세우고 다가왔다. 배에서 내린 여자가 산 어귀로 올라가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왕이 맞이하자 여자가 말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이고 성은 허,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올해 오월에 부모님 꿈에 상제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가락국의 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 사람은 혼인했다. 함께 온 신하와 노비가 스무 명 남짓이었고, 배에는 비단과 금은과 보석이 실려 있었다.
허황옥은 157세까지 살다 189년에 죽었다고 「가락국기」는 적었다. 열 아들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둘에게 어머니의 성을 잇게 했다. 김해 허씨의 유래로 전한다.
아유타국은 어디인가
이 이야기의 핵심 수수께끼다.
인도의 아요디아로 보는 견해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갠지스강 유역의 고대 도시로, 이름의 소리가 아유타와 가깝다.
태국의 아유타야를 드는 견해도 있지만 이쪽은 성립하기 어렵다. 아유타야 왕조는 14세기에 세워졌다. 1300년이 어긋난다.
중국 사천 지역의 보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뒷날 허황옥을 보주태후라 부른 기록이 있는데, 그 보주를 지명으로 읽는 것이다.
파사석탑
김해 수로왕비릉 곁에 돌탑 하나가 있다. 파사석탑이라 불린다.
「가락국기」와 삼국유사는 허황옥이 바다를 건널 때 파도를 잠재우려고 이 탑을 배에 싣고 왔다고 적었다. 그리고 일연은 이 돌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석재를 분석한 연구들이 있었고, 한반도에서 흔치 않은 성분이라는 결과가 제시되기도 했다. 다만 이것이 인도에서 왔다는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분석 방법과 표본을 두고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무엇을 말할 수 있나
확실한 것부터 정리하면 이렇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11세기에 쓰인 글이다. 사건으로부터 천 년 뒤다. 그 사이에 무엇이 더해지고 무엇이 빠졌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1세기에 배로 올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당시 인도양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해로가 실제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은 여러 자료로 확인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가능했다는 것과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이 대목은 정설이 없다. 국내 학계에서 인도 도래설은 흥미로운 가설로 다뤄지지만 통설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남는다. 가야 사람들은 자기 왕비가 아주 먼 바다 밖에서 왔다고 기억했고, 그 기억을 천 년 넘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