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악 — 검은 학이 내려앉았다는 연주

500 · 고구려

중국 진나라에서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내왔다. 좋은 악기였지만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타는지 몰랐다. 왕이 이것을 탈 줄 아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제2상(第二相) 자리에 있던 왕산악(王山岳)이 나섰다. 그는 그 악기를 그대로 쓰지 않고 원래의 모양을 고쳐 새 악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백여 곡을 지어 연주했다.

그러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삼국사기 악지는 적었다. 그래서 그 악기를 현학금(玄鶴琴), 즉 검은 학의 거문고라 불렀고 뒤에 줄여서 현금이라 했다. 거문고다.

언제 사람인지 모른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공백은 시기다.

진나라가 칠현금을 보냈다는 대목을 근거로 4세기 사람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반면 고구려 관제에서 제2상이라는 자리가 확인되는 시기를 근거로 6세기 양원왕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00년 차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확정할 근거가 없다. 삼국사기 악지 자체가 후대에 정리된 것이고, 왕산악에 대한 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고쳤나

칠현금과 거문고는 겉모습부터 다르다. 거문고에는 술대라는 막대로 줄을 치는 방식이 있고, 괘(棵)라는 높은 받침이 있다. 칠현금에는 둘 다 없다.

그래서 왕산악이 한 일이 단순한 개조가 아니라 사실상 새 악기를 만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그것이 정말 한 사람의 작업이었는지, 아니면 고구려에 이미 있던 현악기 전통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정리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거문고와 비슷한 현악기를 타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안악 3호분과 무용총 등에서 확인된다. 이 그림들이 왕산악보다 앞선 시기의 것이라면, 거문고의 뿌리는 중국에서 온 악기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뜻이 된다.

남은 것은 소리가 아니다

왕산악이 지었다는 백여 곡은 하나도 전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소리를 냈는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다.

남은 것은 악기 하나와, 검은 학이 내려앉았다는 문장 하나다. 그리고 그 악기는 지금도 연주된다. 천오백 년 전 사람이 만든 물건을 오늘도 쓰고 있는 셈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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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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