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탈해 — 궤짝에 실려 떠내려온 왕

57 · 아진포 · 토함산

신라에서 왕이 된 세 성씨 가운데 하나가 석씨다. 그 시조가 이 사람인데,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바다에서 왔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적었다. 용성국의 왕비가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알을 궤에 넣고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 배는 가락국에 먼저 닿았으나 사람들이 거두지 않았고, 계림 동쪽 아진포에 이르렀다.

까치들이 배를 따라 울었다.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궤를 열자 단정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를 떼어 석(昔)을 성으로 삼고, 궤를 열고 나왔다 하여 탈해(脫解)라 했다.

용성국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는 다파나국이라 적으면서 왜의 동북쪽 천 리에 있다고 했다.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집을 빼앗다

토함산에 올라 이레를 머물며 성 안을 살핀 그는 좋은 집터를 하나 골랐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이미 호공의 집이 있었다.

탈해는 밤에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었다. 그리고 이튿날 찾아가 여기가 우리 조상의 집이라고 주장했다. 관가에서 무슨 증거가 있느냐 묻자, 우리 조상이 대장장이였으니 땅을 파보면 도구가 나올 것이라 했다. 파보니 정말 숫돌과 숯이 나왔다.

그렇게 집을 차지했다. 사기다. 그런데 사서는 이 대목을 나무라지 않고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적었다.

남해왕이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딸을 주었다. 그리고 유리왕이 죽은 뒤 예순두 살에 왕이 되었다.

뼈로 만든 신

죽은 뒤가 더 이상하다. 삼국유사는 그를 소천구에 장사 지냈다고 적은 뒤 이렇게 이었다. 뒤에 신이 나타나 내 뼈를 조심해 묻으라고 했다. 무덤을 파보니 뼈가 컸고, 부수어 흙과 섞어 소상을 만들어 대궐 안에 모셨다. 그러자 다시 신이 나타나 동악에 두라 하여 토함산에 모셨다.

토함산의 산신이 된 것이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대장장이라는 단서가 눈에 띈다. 그가 자기 조상의 직업으로 댄 것이 하필 야장이었고, 그 증거로 묻은 것이 숫돌과 숯이었다.

그래서 탈해 집단을 철기 기술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온 이주 세력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새로운 기술을 쥔 집단이 기존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이, 숫돌을 묻어 집을 빼앗는 이야기로 남았다는 것이다.

다만 확정할 자료는 없다. 남은 것은 궤짝과 까치와 숫돌뿐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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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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