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계자 — 공을 세우고 산으로 들어간 사람

212 · 사체산

신라 내해왕 때 사람이다. 집안은 미미했으나 사람됨이 뛰어났다고 기록됐다.

두 번의 전투

포상팔국, 곧 남해안의 여덟 나라가 연합해 가라를 쳤다. 가라가 신라에 구원을 청했고, 왕이 군사를 보내 여덟 나라의 군사를 깨뜨렸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가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측근에게 미움을 받아 그 공이 기록되지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공이 큰데 기록되지 않았으니 원망스럽지 않은가.

그가 답했다. 원망할 것이 무엇인가.

다시 3년 뒤 골포 등 세 나라가 갈화성을 쳤다.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막았다. 이번에도 물계자가 수십 명을 베는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이번에도 논공에서 그의 이름이 빠졌다.

아내에게 한 말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신하 된 도리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만나면 자신을 잊는 것이라 했다. 지난번 두 번의 싸움에서 나는 목숨을 바치지도 않았고 몸을 잊지도 않았으니, 이는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다. 이미 불충으로 임금을 섬겨 그 허물이 아버지에게까지 미쳤으니 어찌 효라 하겠는가.

이미 충과 효를 잃었으니 무슨 낯으로 조정과 저자를 다시 다니겠는가.

그리고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지고 사체산으로 들어갔다.

대나무의 성질이 곧은 것을 슬퍼하며 그것에 견주어 노래를 짓고, 골짜기 물소리에 빗대어 거문고를 뜯으며 살았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표면적으로 이 이야기는 자기를 탓하는 사람의 기록이다. 공을 인정받지 못한 것을 두고 남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이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뒤집어 읽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두 번 공을 세우고 두 번 지워진 사람이, 원망 대신 자기 탓을 하고 산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원망을 말하지 않는 것과 원망이 없는 것은 다르다.

삼국유사는 같은 사람을 조금 다르게 적었다. 그가 산에 들어간 뒤 대나무를 보고 사람의 절개를 생각했다는 대목이 더 자세하다.

어느 쪽이든 결말은 같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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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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