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람 혜초는 인도까지 갔다 왔다. 그 여행기를 남겼다. 그리고 천이백 년 동안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동굴이 열리다
1900년, 중국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에서 도사 왕원록이 벽 뒤에 숨겨진 방을 발견했다. 안에 수만 점의 문서와 그림이 쌓여 있었다. 11세기 무렵 봉해진 뒤 그대로 잠들어 있던 자료들이었다.
소문이 퍼지자 각국의 탐사대가 몰려들었다. 1908년 프랑스의 폴 펠리오가 그 가운데 상당량을 사들여 파리로 가져갔다.
그 안에 앞뒤가 떨어져 나간 두루마리 하나가 있었다. 제목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었다. 인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정을 적은 여행 기록이었다.
누구의 글인가
일본 학자 다카쿠스 준지로가 이 문서의 정체를 밝혀냈다.
단서는 당나라 승려 혜림이 지은 불교 사전 『일체경음의』에 있었다. 그 책에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책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들이 풀이되어 있었는데, 그 낱말들이 이 두루마리에 그대로 나왔다.
『왕오천축국전』은 다섯 천축국을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저자가 혜초였다.
무엇을 적었나
남아 있는 부분은 원본의 일부다. 완질이 세 권이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줄여 쓴 한 권 분량으로 보이며, 그마저도 앞뒤가 잘려 나갔다.
그럼에도 담긴 내용은 놀랍다. 인도 각 지역의 왕과 종교와 기후와 음식, 사람들의 옷차림과 장례 풍습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인도를 지나 페르시아와 아랍 지역,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까지 언급한다.
8세기 그 지역을 직접 보고 적은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 자료이면서 동시에 중앙아시아사 연구의 기본 사료로 쓰인다.
중간에 그는 시를 몇 편 남겼다. 그중 하나는 고향을 그리는 내용이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돌아가는데 자기는 편지 한 장 부칠 데가 없다는 취지다. 승려의 여행기 한복판에 이런 문장이 끼어 있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에 머물며 밀교를 공부했고, 780년 무렵 오대산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신라 기록에 그의 이름은 없다. 삼국사기에도 삼국유사에도 나오지 않는다.
신라 사람이 인도까지 갔다 온 일을, 우리는 우리 기록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중국 승려의 사전과 프랑스 탐험가의 수집품과 일본 학자의 대조 작업을 거쳐서 알게 되었다.
지금 그 두루마리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