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편의 여왕에게는 이야기가 하나 더 붙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삼국사기에도 삼국유사에도 없다.
조선 초에 편찬된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이 『수이전』이라는 옛 책을 인용해 전한 이야기다. 『수이전』 자체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신라 때 쓰인 설화집으로 추정되지만 저자도 성립 시기도 확정되지 않았다.
활리역의 사내
활리역에 지귀(志鬼)라는 사람이 있었다.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해 시름에 잠겨 울다가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졌다.
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절에 행차하는 날 그를 불러오게 했다.
지귀는 절에 와서 탑 아래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왕이 나와 잠든 그를 보고는 팔찌를 벗어 그의 가슴 위에 놓아두고 궁으로 돌아갔다.
타오르다
깨어난 지귀가 가슴 위의 팔찌를 발견했다. 왕이 왔다 갔음을 알고는 오래 안타까워하다가, 마음의 불이 일어나 그 몸을 태웠다. 그리고 불귀신이 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왕이 술사를 시켜 주문을 짓게 했다. 지귀의 마음속 불이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었으니, 바다 밖 멀리 옮겨 가 보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풍속에 이 글을 문벽에 붙여 화재를 막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자리
같은 왕에 대해 두 종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미리 알아본 명민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사모하다 타 죽은 사람이다.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끝이 같다. 사람들이 글을 지어 문에 붙였다는 것이다. 앞 편의 비형랑 이야기도 그렇게 끝났다.
신라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었던 듯하다. 무서운 것을 막기 위해 문에 붙이는 실용품이었다.
어디까지 신라의 것인가
이 이야기가 신라 당대의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불교 설화 가운데 술파가라는 어부가 왕녀를 사모하다 불에 타는 이야기가 있고, 이 이야기와 구조가 겹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외래 설화가 신라 왕의 이름을 얻어 자리 잡은 형태로 보는 견해다.
다만 원본인 『수이전』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조선 초 학자가 인용해둔 요약본만 읽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