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도무지 정사에 실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이상한 것 하나가 이것이다.
왕이 여자를 청하다
신라 진지왕이 사량부의 서민 여자 도화랑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궁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청했다. 여자가 거절했다. 여자가 지킬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인데 남편이 있으니 따를 수 없다고.
왕이 물었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는가. 여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왕은 그를 놓아주었다.
그해에 진지왕은 폐위되어 죽었다. 재위 4년 만이었다.
2년 뒤 여자의 남편도 죽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밤, 죽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네가 전에 허락했으니 이제 남편이 없으니 되겠는가.
여자가 부모에게 아뢰자 부모가 임금의 말씀을 어찌 피하겠느냐 했다. 왕은 이레를 머물다 갔다. 그동안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을 비형(鼻荊)이라 했다.
밤마다 나가는 아이
진평왕이 그 소문을 듣고 아이를 궁에 데려다 길렀다. 열다섯이 되자 집사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비형은 밤마다 월성 담을 넘어 서쪽 황천 언덕으로 나가 귀신들과 놀았다. 왕이 군사를 시켜 엿보게 하니 정말이었다. 귀신들은 새벽 절의 종소리가 나면 흩어졌고 비형은 돌아왔다.
왕이 불러 물었다. 네가 귀신들을 거느리고 논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다면 그 무리를 시켜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아라.
비형이 명을 받아 귀신들을 부리니 하룻밤에 큰 돌다리가 놓였다. 그래서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불렀다.
길달
왕이 또 물었다. 귀신들 가운데 사람으로 나타나 조정을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 비형이 길달을 천거했다. 왕이 벼슬을 주니 과연 충직했다.
길달은 흥륜사 남쪽에 문루를 지었고 밤마다 그 위에서 잤다. 그래서 그 문을 길달문이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길달이 여우로 변해 달아났다. 비형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다. 그 뒤로 귀신 무리는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달아났다.
주문이 되다
사람들이 이 일로 글을 지어 붙였다. 성스러운 임금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여기가 비형랑의 집이다, 날뛰는 온갖 귀신들은 이곳에 머물지 말라.
삼국유사는 나라 풍속에 이 글을 써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고 적었다. 문에 붙이는 부적의 유래가 된 셈이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연구자들은 이 이야기를 진지왕의 폐위와 그 세력의 처지를 담은 것으로 읽기도 한다. 폐위된 왕의 핏줄이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궁 안에 있었고, 밤에 다니는 사람들을 부리는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진지왕의 손자가 뒷날의 김춘추, 곧 태종무열왕이다.
다만 이 해석도 짐작이다. 확실한 것은 신라 사람들이 죽은 왕이 낳은 아이 이야기를 만들어 오래 전했고, 그 이름을 문에 붙여 귀신을 쫓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