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 미리 알았다는 세 가지 일

647 1월 · 경주 낭산 · 여근곡

신라의 27대 임금이자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이다. 632년부터 647년까지 다스렸다.

재위 기간에 첨성대를 세웠고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백제의 공격이 잦았고, 당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청했다.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여자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그 난이 진압되는 중에 죽었다.

삼국유사는 이 사람에게 따로 한 조목을 주고 제목을 붙였다. 선덕왕이 미리 안 세 가지 일이라는 뜻이다.

첫째, 나비 없는 모란

당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 그림과 씨앗 석 되를 보내왔다. 왕이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

씨앗을 심어보니 정말 향기가 없었다.

신하들이 어찌 아셨느냐 묻자 왕이 답했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줄 알았다. 이는 당 황제가 내가 짝이 없음을 놀린 것이다.

둘째, 겨울에 우는 개구리

영묘사 옥문지에서 한겨울에 개구리가 사흘 동안 울었다.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급히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군사 2천을 주어 서쪽 교외 여근곡으로 가라 했다. 그곳에 적병이 있을 것이라고.

가보니 백제 군사 500명이 숨어 있었다. 모두 죽였고, 뒤따라온 후속 부대까지 쳤다.

신하들이 어찌 아셨느냐 묻자 왕이 답했다. 개구리가 성난 모습은 군사의 형상이고, 옥문이란 여자의 것이며,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흰데 흰빛은 서쪽이니 군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다고.

셋째, 자기가 죽을 날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인지 몰라 물었다. 왕이 낭산 남쪽이라 했다.

그날이 되자 정말 왕이 죽었고, 신하들은 낭산 남쪽에 장사 지냈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 문무왕이 그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다. 불교에서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왕의 말뜻을 알았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세 이야기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모란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실려 있다. 다만 삼국사기는 이것을 왕이 즉위하기 전 어린 시절의 일로 적었다. 같은 이야기가 두 책에서 시점이 다르다.

개구리 이야기는 예언이라기보다 정보 해석에 가깝다. 겨울에 개구리가 운다는 이상 징후를 보고받고 서쪽 국경을 점검하게 했다면, 그것은 신통력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사후에 완성된다. 왕이 도리천을 말했을 때는 아무도 뜻을 몰랐고, 30년 뒤 아들 세대가 그 자리에 절을 지으면서 예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 이야기가 왜 한데 묶여 전해졌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왕의 통치를 두고 여자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 실제로 나왔고, 그것이 반란의 명분이 되기까지 했다. 그런 시대에 이 왕에 대해 남은 이야기가 하필 미리 알았다는 세 가지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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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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