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주역이다. 이 사람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여기서는 업적을 짧게 지나가고 이상한 대목만 본다.
짧게 정리하면
595년에 태어났다.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이다. 마지막 가야 왕 구형왕의 증손이니, 나라를 잃은 집안의 자손이 신라의 최고 자리에 오른 셈이다.
열다섯에 화랑이 되었고, 누이 문희를 김춘추와 맺어 정치적으로 결합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렸고, 이어 당을 몰아내는 전쟁을 준비했다. 673년에 죽었다. 뒤에 흥무대왕으로 높여졌다. 신하로서 왕의 칭호를 받은 거의 유일한 경우다.
산속의 노인
열일고여덟 살 무렵, 그는 중악의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었다. 적국이 우리를 침범하니 이를 없앨 힘을 달라고.
나흘째 되는 날 거친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이름을 난승이라 했다. 김유신이 절하고 방법을 청하자 노인은 처음에 답하지 않다가, 그가 눈물을 흘리며 예닐곱 번을 거듭 청하자 비법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함부로 전하지 말라 이르고 떠났는데, 몇 걸음 가지 않아 사라지고 산 위에 빛만 남았다.
삼국사기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정사에 실린 대목이라는 뜻이다.
말의 목을 벤 일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젊은 시절 천관이라는 여자의 집에 드나들다 어머니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고, 다시는 가지 않기로 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 졸다 보니 말이 익숙한 길을 따라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말의 목을 베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다만 이 대목은 삼국사기 열전에 없다. 열전에는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다시 가지 않았다는 데까지만 나온다. 말의 목을 벴다는 이야기는 고려 후기 이인로의 글과 조선 시대 지리지 등 후대 문헌에서 자세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김유신의 일화 하나는 그가 죽고 500년쯤 뒤에 자란 이야기다.
무덤에서 나오다
가장 이상한 기록은 그가 죽은 지 100년도 더 지나서 나온다.
779년, 미추왕릉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그 속에 준마를 탄 장군 같은 사람이 있었고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이들이 뒤따라 능 안으로 들어갔다. 능 안에서 우는 소리와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유신의 혼령이 미추왕에게 아뢰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평생 나라를 지켰는데 지금 자기 자손이 죄 없이 죽임을 당했으니 이 나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미추왕이 세 번을 만류해 겨우 돌아갔다.
혜공왕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사람을 보내 사죄하고, 취선사에 밭을 바쳐 그의 명복을 빌게 했다.
이 기록의 배경에는 실제 사건이 있다. 그 얼마 전 김유신의 후손 김융이 반란 혐의로 처형되었다. 통일의 공신 집안이 밀려나던 시기였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항의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왕이 그것을 무서워해 사죄했다는 기록이 남았다. 사람의 원한이 정치를 움직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