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충과 흥수 — 옥에서 보낸 경고

660 6월 · 사비(부여) · 탄현 · 기벌포

백제가 망하기 4년 전, 좌평 성충(成忠)이 의자왕에게 간했다가 옥에 갇혔다.

무엇을 간했는지 삼국사기는 자세히 적지 않았다. 왕이 궁녀들과 함께 지나치게 즐기고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아 성충이 극력 간했다고만 적혀 있다.

그는 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음식을 끊고 죽어가면서 왕에게 글을 올렸다.

옥에서 쓴 글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하는 짧은 글이었다. 그는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무기를 쓸 때는 반드시 지형을 살펴 골라야 한다면서,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적었다. 만약 다른 나라 군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험한 곳에 의지해 막은 뒤에야 됩니다.

왕은 그 말을 살피지 않았다.

4년 뒤

660년, 당의 소정방이 바다를 건너오고 신라의 김유신이 육로로 밀고 들어왔다. 조정은 어디서 막을지를 두고 갈렸다.

의견이 모이지 않자 왕은 사람을 보냈다. 죄를 얻어 고마미지현에 유배되어 있던 좌평 흥수(興首)에게 묻게 한 것이다.

흥수의 답은 성충과 같았다. 당나라 군사는 수가 많고 군율이 엄하며 신라와 함께 앞뒤에서 조여 오니 평지에서 맞서면 승패를 알 수 없다, 백강과 탄현은 우리의 요충이라 한 사람이 창 하나로 만 명을 막을 수 있으니 용감한 군사를 뽑아 그곳을 지키게 하라고.

그리고 그 사이 성을 굳게 지키다가 적의 군량이 떨어지고 병사가 지쳤을 때 치면 반드시 이긴다고 했다.

대신들이 반대했다. 흥수는 오랫동안 유배되어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당군이 백강에 들어오고 신라군이 탄현을 넘도록 둔 다음 치자고 했다.

왕은 그 말을 따랐다. 그리고 망설이는 사이 당군은 이미 백강을 지났고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었다.

계백이 황산벌로 나간 것이 그 다음이다.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 대목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조에 실려 있다. 다만 나라가 망한 뒤에 정리된 기록이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망한 나라의 마지막을 서술할 때, 옳은 말을 한 신하가 있었으나 임금이 듣지 않았다는 구조는 동아시아 사서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그 구조가 실제 사실을 정확히 옮긴 것인지, 아니면 패망을 설명하기 위해 정돈된 것인지 가려내기는 어렵다.

또 하나. 탄현과 기벌포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탄현을 대전 동쪽으로 보는 견해와 금산 방면으로 보는 견해가 갈리고, 기벌포는 금강 하구로 보는 것이 우세하지만 이견이 있다.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지목한 그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우리는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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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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