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 — 바둑으로 나라를 무너뜨린 승려

475 9월 · 한성(서울 풍납·몽촌)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치려고 마음먹고, 먼저 안에서 흔들 사람을 찾았다. 승려 도림(道琳)이 나섰다. 저는 재주가 없으나 나라의 은혜를 갚고자 하니 보내주십시오.

왕은 기뻐하며 그를 보냈다.

들어가는 방법

도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처럼 꾸며서 백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궁궐 문 앞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바둑을 익혀 제법 묘한 경지를 알고 있으니 왕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개로왕이 불러들여 두어보고는 놀랐다. 국수(國手)라 부르며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했고, 그 뒤로 도림을 곁에 두고 매우 아꼈다.

말 한마디

신임이 두터워졌을 때 도림이 입을 열었다. 이 나라는 산과 강이 험해 하늘이 만든 요새인데, 성곽은 수리되지 않았고 궁실은 낡았으며 선왕의 유해는 들판에 임시로 모셔져 있고 백성의 집은 강물에 자주 헐린다고. 대왕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개로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나라 사람들을 크게 동원해 흙을 구워 성을 쌓고, 궁궐과 누각을 화려하게 짓고, 아버지의 무덤을 새로 만들고, 강을 따라 긴 둑을 쌓았다.

삼국사기는 그 결과를 한 문장으로 적었다. 창고가 텅 비고 백성이 곤궁해져 나라의 위태로움이 알을 쌓아둔 것보다 심해졌다고.

도림은 그때 도망쳐 고구려로 돌아가 보고했다. 장수왕은 곧 3만 군사를 일으켰다.

한성이 무너지다

개로왕은 성을 나가 달아나다 붙잡혔다. 그를 사로잡은 고구려 장수 걸루와 만년은 원래 백제 사람이었다. 그들은 왕에게 세 번 절한 뒤 그의 죄를 따지고 아차성 아래로 데려가 죽였다.

백제는 도읍을 웅진으로 옮겼다. 한강 유역을 잃은 것이 이때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한 사람의 첩자가 한 나라를 무너뜨렸다는 서사는 강렬하지만, 그것만으로 475년의 패배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중국 북위에 군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참이었다. 신라와의 동맹도 늦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두 대에 걸쳐 최전성기에 있었다. 도림이 없었어도 상황은 위태로웠다.

그래서 도림 이야기를 패배의 원인이 아니라 패배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나라가 무너진 이유를 구조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간계에서 찾는 서술은 동아시아 사서에서 흔한 형식이다.

다만 반대로, 대규모 토목공사가 실제로 국력을 소모시켰다는 점은 고고학적으로도 뒷받침되는 면이 있다. 풍납토성의 규모는 그 시기 백제가 감당한 공역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든, 이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적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왕이 문을 열어주었다는 구조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출처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고대 지도에서 관련 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