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도미(都彌)는 백제의 평범한 백성이었고,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절개가 있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도미를 불러 말했다. 여자의 덕이라는 것은 결국 은밀한 곳에서 달콤한 말로 꾀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도미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아내는 죽어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첫 번째 시험
왕은 도미를 붙잡아두고, 신하 한 사람에게 왕의 옷을 입혀 말을 태워 그 집으로 보냈다. 가짜 왕이 말했다. 내가 오래전부터 네 아름다움을 들었다. 도미와 내기를 해서 이겼으니 내일 너를 궁인으로 삼겠다. 이제부터 네 몸은 내 것이다.
여자는 알겠다고 답했다. 다만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물러난 뒤, 계집종을 단장시켜 대신 들여보냈다.
두 번째
뒤늦게 속은 것을 안 왕은 크게 노했다. 그리고 도미에게 죄를 씌워 두 눈을 뽑고,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워 보냈다.
그런 다음 여자를 불러들여 강제로 취하려 했다. 여자가 말했다. 이제 남편을 잃었으니 홀로 살 수 없고, 더구나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거스르겠습니까. 다만 지금은 몸이 더러우니 다른 날 목욕하고 오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믿었다.
여자는 그날 밤 도망쳐 강가에 이르렀다. 건널 수가 없어 하늘을 부르며 울자 빈 배 한 척이 물결을 따라 다가왔다. 그것을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아직 죽지 않은 남편을 만났다.
두 사람은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배를 타고 고구려로 갔다.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옷과 먹을 것을 주었고, 산산 아래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어느 왕인가
삼국사기는 이 일이 개루왕 때 있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개루왕은 2세기 사람이다. 이야기 안에서 두 사람이 고구려로 건너가 살았다는 설정은 4세기 이후의 사정에 더 가깝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개루왕을 5세기의 개로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름이 비슷해 옮겨 적는 과정에서 바뀌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로왕은 도림 이야기에서 보듯 삼국사기가 부정적으로 그린 임금이기도 하다.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기보다, 왕의 폭력을 고발하는 이야기가 특정 왕의 이름에 붙어 전해진 형태에 가깝다는 데는 대체로 견해가 모인다.
이름이 없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히 여자다. 판단하고 속이고 도망치고 남편을 찾아낸 사람이 전부 그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우리는 그를 도미의 아내라고 부른다. 남편의 이름은 남았고 그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삼국사기 열전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실린 경우는 손에 꼽는다. 그마저도 대부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로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