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지리지는 땅 이름을 정리한 부분이다. 어느 고을이 옛날에 무엇으로 불렸는지를 적어놓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록이다.
그 목록 한가운데에 이야기 하나가 끼어 있다.
왕봉현(王逢縣)이라는 고을을 설명하면서,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라 왕봉이라 부른다고 적었다. 왕을 만난 고을이라는 뜻이다.
바로 다음 항목인 달을성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한씨 미녀가 높은 산마루에서 봉화를 피워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라 뒤에 고봉(高烽)이라 이름했다고.
지리지에 남은 두 줄
이것이 전부다. 삼국사기 본기에도 열전에도 이 이야기는 없다. 땅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두 줄로만 남았다.
그런데 그 두 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지 않다. 한씨 성을 가진 여자가 있었고, 그가 안장왕을 기다렸고, 산 위에서 봉화를 올려 신호를 보냈고, 그 자리에서 왕을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이 지명이 될 만큼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었다는 것.
안장왕은 519년부터 531년까지 고구려를 다스린 임금이다. 이 시기 고구려는 백제와 한강 유역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왕봉현과 달을성현은 오늘날 경기도 고양 일대, 당시 백제 땅이었다.
신채호가 옮긴 이야기
이 두 줄에 살을 붙인 것은 20세기의 신채호다. 그는 『조선상고사』에서 『해상잡록』이라는 책을 인용해 자세한 줄거리를 전했다.
안장왕이 태자였을 때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백제 땅 개백현에 잠입했다가 그 고을 장자의 딸 한주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왕이 된 뒤 그를 데려오려 했으나 백제 태수가 한주를 가두고 자기 여자로 삼으려 했다는 것, 을밀이라는 장수가 광대로 위장해 잠입해 성을 열었고 한주가 산에서 봉화를 올려 고구려군을 인도했다는 것.
다만 신채호가 인용한 『해상잡록』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 책이 실제로 어떤 책이었는지, 언제 쓰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상세한 줄거리를 사료로 다루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남는 것
확실한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두 줄이다. 한 여자가 산에 올라 불을 피웠고, 그 자리가 고봉이 되었고, 왕을 맞이한 고을이 왕봉이 되었다.
사람은 사라지고 이야기도 흐려졌는데 땅 이름은 남았다. 고양시에는 지금도 고봉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