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전의 마지막 인물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계속 물어온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다.
확실한 것
조선 중종 무렵 개성에 살았던 기생이다.
시조 몇 수와 한시 몇 편이 전한다. 이것이 확실한 것의 거의 전부다.
언제 태어났는지 모른다. 언제 죽었는지 모른다. 본명이 진이라는 것과 기명이 명월이라는 것 정도가 전할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이름은 없다.
남은 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임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는 시조다.
시간을 잘라 보관했다가 다시 펴겠다는 발상이다. 조선 시조 가운데 이런 상상을 한 작품은 드물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로 시작하는 시조도 전한다.
한시도 몇 편 남았다. 그 수준에 대해 조선 문인들이 남긴 평가가 여럿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황진이의 대부분은 시가 아니라 일화다.
벽계수라는 종실이 자기는 황진이를 보아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했는데, 그가 나타나 시조 한 수를 읊자 나귀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
삼십 년을 벽만 보고 수행한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다는 이야기.
서경덕에게는 통하지 않아 그를 스승으로 삼았고, 서경덕과 박연폭포와 자신을 송도삼절이라 했다는 이야기.
죽으면서 자기를 큰길가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들의 출처
이 일화들은 모두 그가 죽은 뒤의 기록에서 나온다.
유몽인의 『어우야담』, 이덕형의 『송도기이』, 허균의 글 등이다. 대체로 17세기 이후다.
그리고 문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상대의 이름이 바뀌기도 하고, 사건의 순서가 다르기도 하다.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자란 흔적이다.
왜 이 인물로 끝내는가
이 사전에 실린 백 명은 대체로 두 종류였다.
기록이 있는데 알 수 없는 사람과, 이야기가 너무 많아 알 수 없게 된 사람.
황진이는 둘 다다.
그가 쓴 시는 남았다. 그 시는 분명히 한 사람의 것이고, 읽으면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생애는 거의 전부가 후대의 이야기다.
작품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 셈이다.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면
첫 편은 괴유였다. 이름이 괴이하다는 뜻이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한 장면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이다.
그로부터 천오백 년 뒤의 황진이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몇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사이에 있는 백 명이 대부분 그랬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이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무엇을 했는지는 남고 누구였는지는 남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 빈칸을 우리가 계속 채워왔다. 이름을 지어주고, 별을 떨어뜨리고, 붓두껍을 쥐여주고, 성별을 바꾸고.
이 사전은 그 채운 자리를 다시 비워보려는 시도였다.
비워놓고 보면 남는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실제로 한 일과, 그가 남긴 몇 줄이다.
대개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