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유 — 이름부터가 "괴이하다"인 사람

22 2월 · 비류수 · 부여 남쪽

고구려 대무신왕이 부여를 치러 북쪽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비류수 가에 진을 쳤는데, 강물에 그릇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위쪽에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찾아 올라갔다. 그곳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키가 아홉 자 남짓, 얼굴이 희고 눈에서 빛이 났다고 삼국사기는 적었다. 그가 왕 앞에 절하고 말했다.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치신다기에 따라가 부여왕의 목을 가져오고자 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한 나라 왕의 목을 따오겠다고 한 것이다. 대무신왕은 그를 받아들였다.

그가 한 일

이듬해 봄, 고구려군은 부여 땅 남쪽에 이르렀다. 그 일대가 진흙 수렁이었다. 왕은 단단한 땅을 골라 진을 쳤지만 병사들은 발이 묶였다. 부여왕 대소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군을 몰아 들이쳤다.

그런데 돌진하던 대소의 말이 진창에 빠졌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게 된 그 순간, 괴유가 칼을 뽑아 들고 뛰어들어 대소의 목을 베었다.

한 나라의 왕이 이름조차 낯선 사내의 손에 죽었다. 부여군은 왕을 잃고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고구려군을 겹겹이 에워쌌다. 대무신왕은 이레 동안 갇혀 있다가 짙은 안개가 낀 틈에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해 겨울, 괴유는 병들어 죽는다. 왕이 직접 찾아가자 그는 자신을 북명의 미천한 사람이라 낮추며 큰 은혜를 입었으니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왕은 그를 북명산 남쪽에 묻고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름이 이상하다

괴유(怪由)의 첫 글자는 괴이하다는 뜻이다. 기이한 자, 정도의 뜻이 된다. 사람이 자기 아이에게 붙일 법한 이름은 아니다.

그래서 본래 이름이 아니라 별칭이거나,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소리만 빌린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다만 어느 쪽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고구려 초기 인명이 대부분 그런 상태이기도 하다.

북명은 어디인가

그가 왔다는 북명(北溟)의 위치도 확정되지 않았다. 강원도 강릉 일대로 보는 견해, 두만강 유역으로 보는 견해, 북옥저 방면으로 보는 견해가 갈린다. 삼국사기 자체가 다른 대목에서 북명을 동해안 쪽으로 쓰기도 해서 더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북명이 고구려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였다는 점이다. 왕에게 자기 출신을 밝히면서 그가 굳이 "미천하다"고 덧붙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모양

전쟁 직전에 홀연히 나타나 결정적인 일을 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이 구조는 실존 인물의 이력서라기보다 이야기의 모양에 가깝다. 그래서 괴유를 건국 초기 왕권을 신비롭게 꾸미기 위한 설화적 장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반대로, 고구려가 주변 세력을 흡수하며 커지던 시기에 변방의 무장 집단이 왕에게 합류한 실제 사건이 이런 형태로 남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가 죽은 뒤 왕이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대목은, 그 집단을 계속 예우해야 할 이유가 있었음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남는 것은 같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지만, 그가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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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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