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과 낙랑공주 — 북을 찢은 밤

32 4월 · 옥저 · 낙랑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이 옥저 지방으로 놀러 갔다가 낙랑왕 최리를 만났다. 최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며 데려가 사위로 삼았다.

낙랑에는 저절로 울리는 북과 나팔이 있었다. 적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낙랑은 기습을 당하지 않았다.

호동은 고구려로 돌아온 뒤 아내에게 몰래 사람을 보냈다. 그대가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나팔을 부수면 내가 그대를 맞이하겠고, 그러지 않으면 맞이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공주는 칼을 들고 무기고에 들어가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순 뒤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은 아버지에게 낙랑을 치자고 권했다.

최리는 군사가 성 아래 이를 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북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사정을 알고 딸을 죽인 뒤 나와서 항복했다.

그리고 호동도 죽는다

같은 해 겨울, 호동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의 첫째 왕비가 참소했기 때문이다. 호동이 자기를 예로 대하지 않았고 음란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호동은 둘째 왕비의 아들이었다.

주변에서 왜 해명하지 않느냐고 하자 호동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해명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죄를 드러내고 아버지께 근심을 끼치는 일이니 효라 할 수 없다고. 그리고 칼에 엎드려 죽었다.

낙랑은 어디인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사랑도 배신도 아니라 낙랑이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낙랑군은 313년까지 존속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낙랑왕 최리가 나온다. 군(郡)에는 태수가 있지 왕이 없다. 그래서 최리의 낙랑국을 낙랑군과는 다른 별개의 정치체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낙랑군의 지배 아래 있던 토착 세력이 자립한 형태로 보기도 하고, 아예 위치가 다른 곳이라고 보기도 한다.

자명고는 무엇이었나

저절로 우는 북이 실제로 있었을 리는 없다. 그래서 이 대목을 낙랑의 방어 체계에 대한 비유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경의 봉수나 척후 조직처럼, 적의 접근을 미리 알려주는 장치가 있었고 그것이 내부의 배신으로 무력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자명고라는 형태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연애담이 아니라 첩보전의 기록이 된다. 공주가 찢은 것은 북이 아니라 낙랑의 정보망이었던 셈이다.

다만 삼국사기 자신도 이 대목에 다른 전승을 병기해두었다. 왕이 낙랑을 멸하려고 혼인을 청해 그 딸을 며느리로 삼은 뒤 본국에 돌려보내 병기를 부수게 했다는 이야기다. 같은 사건에 두 판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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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비한 인물사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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