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차대왕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형을 밀어내고 왕이 된 뒤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 삼국사기는 그의 재위 20년을 공포의 기록으로 적었다.
165년, 연나부 사람 명림답부(明臨答夫)가 그를 죽였다. 백성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사서는 적었다.
그때 명림답부의 나이가 아흔아홉이었다.
그가 세운 임금
차대왕을 죽인 뒤 그는 왕의 아우 백고를 데려다 왕으로 세웠다. 신대왕이다. 새 왕은 그를 국상(國相)으로 삼았다. 고구려에서 국상이라는 자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이때다. 좌보와 우보로 나뉘어 있던 최고 관직을 하나로 합쳐 그에게 준 것이다.
권력을 쥔 그가 한 일은 대사면이었다. 차대왕 시절 죄를 입고 도망친 사람들을 모두 돌아오게 했다.
일흔세 살 차이
172년, 한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조정은 맞서 싸우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저들이 수가 많다고 겁내면 앞으로도 계속 온다는 논리였다.
명림답부만 반대했다. 상대는 수가 많으니 정면으로 부딪히면 안 된다, 성을 굳게 지키고 들판을 비워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면 열흘이나 한 달 안에 굶고 지쳐 돌아갈 것이다, 그때 치면 된다.
왕이 그 말을 따랐다. 한군은 성을 쳐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들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도 못하다가 물러섰다. 명림답부가 기병 수천을 이끌고 좌원까지 쫓아가 쳤고, 한군은 말 한 필 돌아가지 못했다고 기록됐다.
이때 그의 나이가 백여섯이다.
179년, 그는 죽는다. 삼국사기는 백십삼 세라고 적었다. 신대왕이 직접 가서 슬퍼하고 이레 동안 조회를 파했으며, 예를 갖춰 질산에 장사 지내고 무덤을 지키는 사람 스무 집을 두었다.
나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기록의 가장 이상한 대목은 나이다. 아흔아홉에 정변을 일으키고, 백여섯에 기병을 이끌고 추격전을 벌이고, 백열셋에 죽는다.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고대 기록에서 오래 산 사람의 나이는 권위를 나타내는 장치로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구려 초기 왕들의 재위 연수 자체가 실제보다 늘어나 있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
다른 각도의 해석도 있다. 명림답부가 한 개인이 아니라 연나부라는 유력 집단의 대표 직함이었고, 그 집단이 여러 대에 걸쳐 한 일이 한 사람의 이력으로 압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 사전에 두 번 들어갈 자격이 있다. 나이 때문에 이상하고, 그 나이가 진짜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어서 또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