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에서 청까지 3,500년. 중원 왕조와 한국사를 나란히 놓고, 실제로 부딪힌 자리에만 양쪽 군주와 장수를 마주 세웁니다. 세로선이 몰린 구간이 곧 격변기입니다.
왕조 단위와 인물 단위를 섞었습니다. 중원의 황제를 다 세우면 500명이 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왕조 막대만 그리면 “누가 누구와 싸웠나”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기본은 왕조 막대로 두되, 실제로 부딪힌 자리에만 양쪽 군주와 그 자리에 섰던 장수를 세웠습니다. 한국사의 왕을 낱낱이 보시려면 사국 왕계도로 가십시오 — 그 도표가 왕계를 맡고, 이 도표가 접점을 맡습니다.
이름을 얻은 왕조와 배경으로 묶인 왕조가 있습니다. 오호십육국 열여섯을 다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중 고구려와 실제로 부딪힌 전연과 불교를 전한 전진만 이름을 얻고 나머지는 흐릿한 띠로 묶었습니다. 남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 한국사 사료에 이름이 나오는 왕조만 이름을 얻습니다. 세계사 교과서가 아니라 한국사 아틀라스이기 때문입니다.
인물이 비어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위진남북조 369년처럼 중원이 갈라져 있고 한반도와 큰 다툼도 없던 시기에는 왕조 막대만 두고 인물을 비웠습니다. 그런데 이 비어 있음 자체가 읽힙니다 — 중원이 조용한 동안 삼국이 각자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채우지 않는 것이 내용이 되는 것은, 사국 왕계도의 대가야 빗금과 같은 원리입니다.
가로축의 축척이 구간마다 다릅니다. 은·주·춘추전국 1,400년은 압축했고, 삼국·고려·조선과 겹치는 구간에는 폭을 더 주었습니다. 선형으로 그리면 정작 접점이 몰린 구간이 뭉개지기 때문입니다. 눈금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오류가 아니라 이 도표가 한국사 쪽에서 중원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원이 갈라져 있던 시간을 다 더하면 1,300년쯤 됩니다. 춘추전국 549년, 위진남북조 369년, 오대십국과 요·송·금의 병립 372년. 우리는 “중국”을 하나의 연속체로 배우지만, 도표 위에서 그 연속은 절반쯤 끊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끊긴 시간이 한반도에는 숨통이었습니다. 낙랑을 몰아낸 것도, 삼국이 각자 체제를 세운 것도, 고려가 선 것도 모두 중원이 갈라져 있을 때였습니다. 반대로 중원이 하나가 될 때마다 한반도는 흔들렸습니다 — 한 무제와 고조선, 수·당과 고구려, 명과 위화도, 청과 삼전도.
그렇다면 이 땅의 역사는 스스로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옆 나라가 갈라져 있던 틈에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그 틈이 다시 닫힐 때마다 무엇을 치렀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배우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