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이 황금의 나라가 된 과정 — 1926년 『미광』
주장
경상북도 의성에 있던 고대 소국 조문국(召文國)을 두고 황금이 가득했던 나라, 여성이 여러 대에 걸쳐 다스린 여인국, 연나라 유민이 세운 왜북(倭北)과 왜속연(倭屬燕)이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지역 소개 글과 언론 기사에도 반복해서 실린다. 그런데 조문국에 대한 당대 기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벌휴이사금 2년(185) 조의 한 문장, 곧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쳤다는 기사가 사실상 전부다.
반박
이 이야기들의 출처는 1926년에 나온 『미광(微光)』이라는 55쪽짜리 책이다.
저작 겸 발행자는 적도교웅(荻島敎雄)으로, 당시 경상북도 의성군 산운 주재소의 관리였다. 주재소는 일제의 말단 경찰 기관이다. 1926년 12월 1일 대구에서 인쇄해 같은 달 20일 발행했고, 실물이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남아 있다.
책의 성격은 목차에서 드러난다. 앞부분은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동국통감』과 의성 읍지를 인용해 고대사를 개관하는데, 그 가운데 「고대의 경북」 편은 임나일본부설에 입각해 고대 경상북도의 역사를 설명해놓았다. 앞 두 편에서 본 그 논리가 이 책의 뼈대라는 뜻이다.
두 번째 부분이 문제의 대목이다. 조문물어(召文物語)라는 제목 아래 「비사(秘史)」, 「김씨등극」, 「이십팔지」, 「귀수사」, 「어정」, 「신상」, 「적라를 정벌」, 「조문풍」 같은 항목이 이어지며 다른 어떤 자료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조문국의 연혁을 상세히 서술한다. 그런데 그 전거가 본문에 제시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 유통되는 조문국 이야기의 세부는 대부분 이 대목에서 나왔다.
독음도 이 책이 건드렸다. 「조문해(召文解)」에서 저자는 소문이 여자의 소문과 소리가 같은 것을 피하려면 글자를 뒤집어 문소라 해야겠다는 취지로 적었다. 召文을 소문으로 읽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문이라는 독음은 앞 편에서 본 소시모리와 소리가 겹친다. 의성에서는 신라 이래 조문으로 구비전승되어 왔고 금성면이 본래 조문면이었으며 1931년 개교한 학교 이름도 조문국민학교였다는 점을 들어 조문을 주장한다.
시기도 함께 보아야 한다. 1920년대는 경주에서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이 잇달아 발굴되어 신라 금관 여섯 점 가운데 셋이 쏟아져 나온 때다. 황금의 나라라는 상상이 자랄 조건이 갖춰져 있었고, 같은 시기 일제는 임나일본부의 물증을 찾아 김해와 고령과 창녕을 파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문헌으로 만들어낸 것이 발굴로 얻지 못한 자리를 메운 셈이다.
고고학이 실제로 말하는 조문국은 다르다. 1960년 탑리 고분 발굴을 시작으로 금성면 대리리·탑리리·학미리 일대의 고분군에서 조우형 금동관, 금동관모, 은제관장식, 환두대도, 금동귀걸이, 의성양식 토기가 나왔다. 대부분 5~6세기 유물이며, 일본과의 연결이 아니라 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신라·고구려 계통의 영향을 함께 보여주는 자료다. 학계가 흥미롭게 보는 지점은 황금이나 여인국이 아니라 고구려 계통으로 보이는 관 장식이 왜 경북 내륙에서 나오는가 쪽이다.
『미광』을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조문국을 가장 적극적으로 서술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1920년대 의성 지역이 자기 역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값이 있다. 전거의 객관성이 미흡해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현재의 평가다.
다만 고증을 거치지 않은 대목을 사실로 옮겨 적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 서술이 임나일본부설을 뼈대로 삼은 책에서 나왔다면 더욱 그렇다.
출처
- [기록보존소] 디지털의성문화대전 — 『미광(微光)』
- [단행본]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 · 벌휴이사금 2년
- [정부·공공기관] 의성조문국박물관 — 조문국 출토 유물
이 글은 역사왜곡에 맞서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