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갈래는 끝이자 시작이다. 사서 지키고, 찾아내고, 돌려받은 것이 누구의 것으로 남느냐의 문제다.
손재형이 1944년 도쿄에서 받아 온 세한도는 그 뒤 몇 사람의 손을 거쳤다. 그러다 개성 출신 수집가 손세기에게 갔고, 아들 손창근이 이어받아 지켰다. 손창근은 앞서 아버지와 함께 모은 옛 글씨와 그림 삼백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내놓았고, 2020년에는 마지막까지 곁에 두었던 세한도마저 아무 조건 없이 내놓았다. 그림 한 점이 사서 지킨 사람, 되찾아 온 사람, 이어서 지킨 사람, 내어놓은 사람을 모두 거쳐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되었다.
평생 모은 것을 나라에 내놓은 사람은 그 밖에도 많다. 사업가 이홍근이 모은 수천 점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렇게 모인 기증품은 지금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중요한 한 축이다. 사서 지킨 일이 개인의 일이었다면, 내어놓는 일은 그것을 공공의 일로 바꾼다.
이 시리즈를 마치기 전에 적어 둘 사람들이 있다. 일본인이다. 1922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앞에 들어서면서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 하자,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사라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라는 글을 써서 반대했다. 광화문은 헐리지 않고 옮겨졌다. 그는 2년 뒤 경복궁 안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열었다. 그 곁에는 조선의 산에 나무를 심고 조선의 소반과 도자기를 연구하던 아사카와 다쿠미가 있었다. 다쿠미는 1931년 조선에서 세상을 떠나 스스로 원한 대로 망우리에 묻혔다.
그러나 야나기의 이름에는 비판이 함께 따라다닌다. 그는 조선 미술의 아름다움을 「슬픔의 아름다움」이라 불렀다. 식민지 사람들을 가엾은 존재로 굳혀 보는 시선이라는 지적이다. 조선의 물건을 아낀 마음과, 조선 사람을 대등하게 보지 못한 한계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다. 둘 가운데 하나만 적으면 거짓이 된다.
다섯 편을 모아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문화재를 지킨 일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부자가 샀고, 사서가 찾았고, 사학자가 알렸고, 스님과 시민이 싸웠고, 수집가가 내어놓았다. 그리고 그 곁에는 국경 너머에서 손을 보탠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