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이라는 이름의 것

1842 · 중국 난징

영국은 차를 사느라 은이 계속 빠져나가는 구조를 바꾸고 싶어 했다. 그 해법으로 택한 것이 인도산 아편이었다. 무굴 편에서 벵골의 징세권을 쥔 그 회사가 재배와 유통의 한쪽에 있었다 — 한 제국의 붕괴가 다른 제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통로가 이 상품이다.

청이 단속에 나서자 전쟁이 벌어졌고 2년 만에 끝났다. 1842년의 조약으로 홍콩을 넘기고 다섯 항구를 열며 배상금을 물기로 했다. 뒤이은 문서에는 관세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는 조항과, 자국민을 청의 법으로 재판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것이 이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형태다. 무굴 편에서는 징세권이 계약으로 넘어갔고, 여기서는 관세와 재판권이 조약으로 떨어져 나간다. 나라는 그대로 있고 주권의 항목만 하나씩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주의할 것이 있다. 이 패배를 정체된 제국이 서양의 충격에 무너진 사건으로 정리하면 정확하지 않다. 이 무렵 청의 인구는 3억 안팎이었고 경제 규모는 세계 최대급이었다. 패배의 원인은 해안선 전체를 지킬 수 없는 나라가 어디든 상륙할 수 있는 해군을 상대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더 큰 타격은 안에서 왔다. 1850년부터 14년간 이어진 내전은 남부의 넓은 지역을 휩쓸었고, 사망자 규모는 세계사에서 손꼽힌다. 진압한 것은 중앙군이 아니라 지방 유력자들이 조직한 군대였고, 그때부터 군사력이 지방으로 흩어진다. 제국을 무너뜨린 힘은 밖보다 안에서 더 컸다.

청은 이 시기를 견디고 서양식 군대와 공장을 들이는 개혁에 들어간다. 30년 넘게 이어졌고 함대와 병기창이 실제로 만들어졌다. 오스만 편의 탄지마트와 같은 시기에 같은 성격의 시도가 진행된 셈이며, 두 개혁 모두 절반의 성과에서 멈췄다.

조선에도 소식은 전해졌다. 사절과 서적을 통해서였고, 종주국이 유럽에 패했다는 사실은 사대 질서의 근거 자체를 흔드는 소식이었다. 34년 뒤 조선이 맺는 조약에도 같은 성격의 조항이 들어간다.

나라가 그대로 있는데 주권의 항목만 하나씩 빠져나갈 때, 그것을 잃었다고 말해야 할 시점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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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