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조선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에 조선 정부가 청군을 불렀고,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두 나라가 조선 땅에서 싸웠고 청이 졌다. 이듬해 맺어진 조약의 첫 조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조선이 아닌 두 나라가 조약으로 확인했다는 것 — 그 문장의 형식 자체가 당시의 처지를 말한다. 수백 년 이어진 관계가 다른 나라 사이의 문서로 끝났다.
2년 뒤 대한제국이 선포된다. 황제국을 칭한 것은 더 이상 위에 종주국이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다만 그 자리를 곧 다른 힘이 채웠다.
청 쪽에서 보면 이 패배는 결정적이었다. 30년 개혁으로 만든 함대가 한 번의 전쟁에서 사라졌고, 배상금은 국가 세입의 몇 배에 달했다. 그 뒤 열강이 앞다투어 조차지와 이권을 가져갔다. 1900년의 봉기와 그 진압은 그 압력에 대한 반작용이자 또 한 번의 패배였다.
조공국들은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류큐는 1879년 일본으로, 베트남은 1885년 프랑스로, 조선은 이 조약으로. 청을 중심에 둔 동아시아의 질서가 20년 안에 해체되었다.
1911년 혁명이 일어나고 이듬해 마지막 황제가 물러났다. 296년 만이며, 2천 년 넘게 이어진 황제 제도 자체의 끝이기도 했다. 그런데 새로 선 공화국은 청이 만든 판도를 그대로 물려받겠다고 선언한다. 무너뜨린 제국의 경계를 상속한 것이며, 오스만이 로마의 칭호를 가져가고 영국이 무굴의 의례를 차용한 것과 같은 계열의 일이다.
같은 시기 만주는 조선인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다. 청이 오래 봉금했다가 19세기 말 개방한 그 땅에 이미 많은 조선인이 이주해 있었고, 그 사회가 무장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1932년, 일본이 그곳에 세운 괴뢰국의 자리에 청의 마지막 황제가 앉는다 — 사라진 제국의 이름이 다른 제국의 도구로 다시 쓰인 것이다.
20세기 초는 유라시아의 제국들이 연달아 무너진 시기였다. 청과 러시아, 오스만과 합스부르크가 10년 안에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국민국가였고, 제국의 경계 안에 섞여 살던 사람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묶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다.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국민국가가 들어설 때, 제국의 경계는 왜 그대로 남았을까? 그리고 그 안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