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그리고 그 청구서를 받은 사람들

1833 · 바베이도스 브리지타운

이 제국의 첫 번째 큰 이익은 향신료도 면직물도 아니었다. 설탕이었다.

17세기 후반 카리브의 섬들이 설탕 농장으로 바뀌었고, 그 노동은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했다. 면적으로 보면 작은 섬 몇 개지만 이익은 북아메리카 전체보다 컸던 시기가 있다. 배는 영국에서 공산품을 싣고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싣고 카리브로, 카리브에서 설탕을 싣고 영국으로 돌았다.

붙잡아 오는 일은 대개 현지의 세력이 맡았고 유럽 상인은 해안의 요새에서 받았다. 협력 없이 유지되는 지배는 없다는 이 시리즈의 반복되는 관찰이 여기에도 해당한다. 그것이 사들인 쪽의 책임을 덜지는 않는다.

1807년 영국은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33년에는 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다른 여러 나라보다 앞선 조치였고, 이후 해군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노예선을 단속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것을 만들었나. 오랜 폐지 운동이 있었고, 교회와 시민들의 청원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노예 자신들의 저항이 있었다. 카리브에서 반복된 봉기는 이 제도가 유지 비용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도덕적 각성만으로도, 경제적 계산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청구서가 있었다. 폐지법은 2천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받은 쪽은 해방된 사람들이 아니라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들이었다. 재산을 잃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가 예산의 큰 몫이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진 빚이 정리된 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다. 해방된 사람들은 보상 대신 몇 년간 무보수 도제 노동을 더 해야 했다.

그 노동력을 대신할 사람들은 인도와 중국에서 계약 노동자로 왔다. 오늘날 카리브와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인구 구성이 이때 만들어졌다. 하나의 강제 이동이 끝나면서 다른 형태의 대규모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나라가 가장 앞서 폐지하고 그 폐지의 값을 가해자에게 치렀다면, 우리는 그 나라의 도덕적 위치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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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영제국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