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자료실에 별도의 긴 시리즈가 있다. 이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무엇을 담고 있는지, 학계는 왜 20세기의 저작으로 보는지, 재야는 어떻게 반박하는지, 그리고 항목별로 근거의 강도가 어떻게 갈리는지까지 이미 다뤄져 있다.
그러니 이 편은 그 논쟁을 다시 하지 않는다. 여기서 볼 것은 딱 하나다. 중국 사서를 인용하는 방식이다.
이 시리즈가 스물일곱 편을 오면서 만든 도구가 있다. 그 도구를 인용문에 대 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연습은 환단고기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에도, 신문 기사에도, 우리 자신의 글에도 똑같이 쓴다.
첫 번째 도구는 앞뒤 두 문장이다.
10편에서 흰옷 기록을 볼 때 썼던 것이다. 부여 사람들이 흰옷을 입었다는 문장만 떼면 소박한 흰옷의 민족이 되고, 바로 다음 문장까지 읽으면 나라 밖에서는 비단과 모피와 금은을 쓰던 사회가 된다.
22편의 칭찬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천성이 부드럽고 순하다는 문장 다음에 그래서 도로 다스리기 쉽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 어떤 인용을 만나면 먼저 원문을 열고 그 앞뒤를 봐야 한다. 실재하는 구절이라도 앞뒤가 잘리면 다른 말이 된다. 이것은 인용자의 정직성 문제가 아니라 인용이라는 행위 자체의 성질이다.
두 번째 도구는 계통이다.
20편에서 세운 규칙이다. 사료의 개수가 아니라 계통의 개수를 세라. 어떤 주장이 여러 사서에 나온다고 제시될 때, 그 여러 사서가 서로 다른 계통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남사와 북사가 앞선 사서들의 재편집본이라는 것, 후한서가 삼국지를 바탕에 놓았다는 것을 알면 목록의 길이가 줄어든다.
세 번째 도구는 서식이다.
19편에서 본 것이다. 어떤 문장이 위치 칸을 채운 문장인지, 풍속 칸을 채운 문장인지를 보면 그 문장에 얼마나 무거운 것을 얹을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23편에서 남으로 왜와 접한다는 구절을 다룰 때 이 도구를 썼다.
네 번째 도구는 빈칸이다.
21편의 이야기다. 안 적혔다는 것은 없었다는 뜻이 아니지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도 아니다. 기록이 없는 자리는 지금은 알 수 없는 자리다. 그 자리를 채우는 문장을 만나면 무엇을 근거로 채웠는지 물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전하지 않는 책이다.
8편에서 한원을 볼 때 얘기했다. 지금은 없어진 책을 인용하는 일 자체는 정당하다. 배송지의 주가 위략을 살렸고 옹공예의 주가 고려기를 살렸다. 다만 그 인용을 확인할 방법은 인용된 그 자리뿐이다. 없어진 책을 근거로 대는 주장은, 그 인용이 어디에 어떻게 실려 있는지를 함께 대야 검증이 시작된다.
이 다섯을 순서대로 대면 대부분의 인용은 판정할 수 있다. 실재하는 구절인가. 앞뒤가 붙어 있는가. 몇 계통인가. 어느 칸의 문장인가. 그리고 그 구절이 실제로 증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 물음이 가장 중요하다. 인용된 구절이 실재한다는 것과, 그 구절이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17편에서 본 맹자의 순임금 대목이나 설문해자의 군자국 대목이 그랬다. 구절은 실재한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증명하느냐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절차는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20편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서술에도 같은 자를 대야 한다고 했고, 25편에서 광개토왕비도 목적을 가진 문서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인용을 점검하는 잣대를 상대에게만 들이대면,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하는 일도 논증이 아니라 편들기가 된다.
사료 읽는 법. 인용을 만나면 원문을 열어라. 열 수 없는 인용은 아직 근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