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디에 어떻게 사는가는 그 사회의 형편을 가장 직접 보여준다. 삼국지 동이전은 이 항목도 빠뜨리지 않았다.
부여부터 보자. 그 백성은 한곳에 자리 잡고 살며 궁실과 창고와 감옥이 있다(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짧은 문장인데 세 가지가 들어 있다. 궁실이 있다는 것은 왕이 있다는 뜻이고, 창고가 있다는 것은 거두어 쌓았다는 뜻이며, 감옥이 있다는 것은 가두는 권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12편에서 본 영고 기록의 갇힌 사람을 풀어 준다는 대목이 여기와 맞물린다.
성에 대한 기록도 있다. 성책을 만드는데 모두 둥글어 감옥과 비슷하다(作城柵皆員, 有似牢獄).
둥근 성. 중국의 성은 대개 네모난데 부여의 성책은 둥글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록자에게는 낯설게 보였고, 그래서 자기가 아는 것 가운데 둥근 것을 찾아 감옥 같다고 적었다. 11편에서 말한 견줌이 여기서도 나온다.
고구려는 사정이 다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벌판과 못이 없어 산골짜기를 따라 살며 산골 물을 마신다. 그런데 집 짓기를 좋아한다고 적혀 있고, 사는 곳 좌우에 큰 집을 세워 귀신에 제사하며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한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창고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다. 큰 창고가 없고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는데 이를 부경이라 한다(無大倉庫, 家家自有小倉, 名之爲桴京).
부경. 우리말 소리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집집마다 있던 작은 창고 이름이 이렇게 남았다.
그런데 이 문장을 앞 편의 다른 문장과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달라진다. 큰 집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하호가 먼 데서 져다 준다고 했다. 큰 창고는 없는데 만여 명이 앉아서 먹는다. 모아 두는 방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가져오게 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창고 하나가 사회 구조를 알려 준다.
남쪽으로 가면 집의 모양 자체가 다르다. 삼국지 한 조는 이렇게 적는다. 사는 곳은 풀로 지붕을 이은 집과 흙집을 짓는데 모양이 무덤 같고 문이 위에 있으며, 온 집안이 그 안에 함께 살아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居處作草屋土室, 形如冢, 其戶在上).
반쯤 땅에 묻힌 움집을 밖에서 본 묘사다. 실제로 이 시기 남부 지역에서는 그런 집터가 발굴된다. 관찰로는 정확하다.
다만 마지막 한마디가 또 판단이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 한 방에서 온 식구가 산다는 사실을 적은 것이지만, 그것을 구별이 없다고 표현한 것은 유교적 질서를 자로 놓고 잰 결과다.
성 쌓는 이야기도 한 조에 나온다. 관가에서 성곽을 쌓게 할 때 젊고 굳센 이들이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밧줄로 꿰고 한 길 남짓한 나무를 매단다는 대목이다.
이 기록은 오래 논란이 됐다. 문자 그대로 노동의 방식으로 읽는 견해가 있고, 성인이 되는 의례나 힘을 겨루는 풍습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중국 기록자에게는 몹시 기이하게 보였을 장면이고, 기이했기 때문에 적혔을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부여에는 궁실과 창고와 감옥이 있었고 성은 둥글었다. 고구려에는 큰 창고가 없고 집집마다 부경이 있었다. 남쪽에는 무덤처럼 생긴 움집이 있었다. 세 가지 다른 삶의 방식이 세 문단에 담겼다.
사료 읽는 법. 건물과 창고를 적은 기록은 그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모으는지를 알려 준다. 큰 창고가 있는가 집집마다 작은 창고인가, 성이 둥근가 네모난가. 이런 세부는 꾸며 적기 어려운 것들이라 대체로 믿을 만하다. 다만 그 세부에 붙은 형용사, 감옥 같다거나 무덤 같다거나 구별이 없다거나 하는 말은 기록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