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학교에서 외웠던 그 세 이름은 모두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편에서 나왔다.
세 대목을 나란히 놓아 보자.
부여. 은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사하는데 나라 안의 큰 모임이라, 며칠을 이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를 영고라 한다. 이때 형벌과 옥사를 멈추고 갇힌 사람을 풀어 준다(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고구려. 시월에 하늘에 제사하는데 나라 안의 큰 모임이라, 이름을 동맹이라 한다(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예. 늘 시월에 하늘에 제사하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를 무천이라 한다(常用十月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세 문장의 뼈대가 같다. 언제 하늘에 제사하고, 온 나라가 모이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리고 이름을 적는다.
같은 틀로 적혔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할 수 있다. 세 곳의 관습이 실제로 비슷했을 수도 있고, 기록자가 같은 항목을 같은 순서로 채워 넣었을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중국 사서는 위치, 풍속, 관제, 물산을 정해진 순서로 적었고, 제천행사는 풍속 칸에 들어가는 항목이었다.
그래도 이름 셋이 남은 것은 큰 소득이다. 영고, 동맹, 무천. 이 세 글자씩이 그 시절 그 땅에서 실제로 불리던 말을 한자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뜻을 옮긴 것인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기록자가 굳이 이름을 적어 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행사가 남의 눈에도 뚜렷하게 보였다는 뜻이다.
한 가지 어긋나는 것이 있다. 시기다.
고구려와 예는 시월인데 부여만 은나라 정월이다. 이것을 부여가 정말 은나라 역법을 썼다는 뜻으로 읽는 견해가 있고, 기록자가 자기 지식의 틀로 옮겨 적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10편에서 흰옷 이야기를 할 때 은나라 사람이 흰색을 숭상했다는 관념을 짚었는데, 부여 조에서는 은나라의 색과 은나라의 역법이 한 문단 안에 함께 나온다. 그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제천행사 말고도 노래에 관한 기록이 흩어져 있다.
부여 조에는 길을 갈 때 밤낮으로 늙은이 젊은이 없이 모두 노래하여 온종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다(行道晝夜無老幼皆歌, 通日聲不絶). 큰 행사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랬다는 이야기다.
고구려 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그 백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나라 안 읍락에서는 밤이면 남녀가 무리로 모여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논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群聚, 相就歌戱).
그리고 같은 조에 술 이야기가 붙어 있다. 그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술을 잘 빚는다(其人潔淸自喜, 善藏釀).
이런 대목이 이 시리즈에서 값진 이유가 있다. 정치나 전쟁 기록은 다른 데서도 얻을 수 있지만, 저녁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여 노래했다는 문장은 여기 말고는 나올 데가 없다. 3세기 어느 마을의 밤이 어땠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몇 안 되는 자료다.
다만 조심할 것도 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는 서술은 중국 사서가 동쪽 사람들을 적을 때 되풀이해 쓰는 말이기도 하다. 되풀이된다는 것은 실제로 그랬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렇게 적는 습관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구분은 3부에서 베끼기의 계보를 다룰 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마지막으로 부여의 영고 기록에 붙은 한 줄을 다시 본다. 이때 형벌과 옥사를 멈추고 갇힌 사람을 풀어 준다.
큰 명절에 죄인을 놓아주는 일은 여러 사회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관습만이 아니다. 부여에 옥이 있었고 형벌 체계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 해에 한 번 멈추는 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잔치 기록 한 줄에 그 사회의 제도가 딸려 나온 셈이다.
사료 읽는 법. 풍속 항목은 정해진 칸에 채워진 것이라 서로 닮아 보인다. 그럴 때는 칸에서 삐져나온 대목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부여의 사면, 고구려의 저녁 마을, 술 빚는 솜씨 같은 것들이다. 틀에 없는 문장이 대개 실제로 본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