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금정굴 — 수복 뒤, 산으로 가는 두 번째 이유
9·28 수복 직후, 경찰과 치안대가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주민 150명 이상을 금정굴에서 처형했다. 재판은 없었다. 부역의 범위는 넓었다 — 인민위원회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 배급을 받은 사람, 가족 중 누군가가 좌익이었던 사람. 같은 일이 전국에서 벌어졌고, 이것이 신빨치의 두 번째 공급원이었다. 첫째가 퇴로를 잃은 인민군 낙오병이라면, 둘째는 수복이 곧 처형을 뜻했던 사람들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남은 전북 마을 증언은 이 경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 잘 알지도 못한 채 조직에 이름을 올렸다가 두려워서 올라간 젊은이들, 그리고 얼마 뒤 자수하러 내려왔다가 치안대의 자의적 판단으로 총살된 사람들. 산은 이념의 장소이기 전에 도피처였고, 그 도피처를 만든 것은 산 아래의 처형이었다. 민간인 희생의 세부는 「학살의 기록」 루트가 다룬다.
이 사건은 파르티잔 · 빨치산 · 빨갱이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