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 경무부장 — 강경 진압의 설계자

1948년 · 제주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 직후 "제주도는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담화를 발표해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었다. 4·3 발발 후에는 서북청년단 수백 명을 제주에 증파하도록 주도했고, 1948년 5월 5일 김익렬·딘 군정장관 등이 모인 수뇌회의에서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선무공작을 내세운 김익렬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 그는 김익렬의 증거를 조작이라 몰아붙이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지목해 결국 해임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가 "제주도민 90%가 좌익이니 싹 쓸어버리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친일 경찰을 그대로 등용해 "pro-jap이 아니라 pro-job(전직)"이라는 망언을 남기기도 한 그는, 이후 거창 양민학살에서도 강경 진압을 지시해 비판을 받는다. 이승만 정권에는 끝까지 맞선 야당 정치인으로 후일 평가받지만, 제주에서의 행적은 그 평가와 별개로 무겁게 남아 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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