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렬과 김달삼의 4·28 평화협상

1948년 4월 28일 · 제주 대정면 구억국민학교

제주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선 선무, 후 토벌" 원칙을 세우고, 1948년 4월 28일 단신으로 한라산 무장대 진영을 찾아 무장대 총책 김달삼(본명 이승진)과 4시간에 걸친 담판을 벌였다. 둘은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 동기생이었다. 그 결과 72시간 내 전투 중지, 무장대의 점진적 무장해제, 귀순자 신변 보장을 골자로 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 4·3 발발 25일 만의 극적인 휴전이었다. 그러나 사흘 뒤인 5월 1일, 우익 청년단체가 제주읍 오라리 마을에 불을 지른 "오라리 방화사건"이 무장대의 소행으로 조작 보도되며 합의는 깨졌다. 5월 5일 회의에서 조병옥 경무부장이 김익렬의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라는 점과 그가 김달삼과 동기라는 점을 들어 그를 용공분자로 몰아세웠고, 격분한 김익렬이 몸싸움까지 벌인 끝에 다음 날 해임됐다. 그가 막아보려 했던 더 큰 비극은 그의 해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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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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