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대령 부임과 암살 — "30만 희생설" 논쟁

1948년 5월 6일 · 제주

김익렬 해임 이튿날인 1948년 5월 6일, 강경 진압을 주장해온 박진경 중령이 9연대장으로 부임했다(이후 11연대장 겸임, 6월 14일 대령 진급). 그는 부임 43일 동안 약 6천 명의 도민을 체포했는데 10대 소년과 60대 노인, 부녀자까지 다수 포함됐다. 6월 18일 그는 부하 문상길 중위·손선호 하사 등에게 암살됐다. 법정에서 손선호는 "박 대령이 3천만 민족을 위해 30만 제주도민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방침을 내렸다"고 증언했지만, 같은 법정에서 문상길은 "김달삼이 그런 명분으로 암살을 종용했다"고 진술해 두 증언이 서로 엇갈렸다. 박진경의 동료 장교들(채명신 등)은 그런 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이는 사형을 앞둔 암살범들의 자기 정당화였다는 주장도 있다. 박진경 재임 중 군의 직접적인 무장대 사살은 약 14~25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제주 민간인 희생의 대다수는 그의 사후인 그해 10월 이후 발생했다. 이 발언의 사실 여부와 박진경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치열하게 엇갈리는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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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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