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 신주를 앞세우고 돌아와, 일기가 멈추다
그때 나라는: 남이웅은 뒤에 대사헌·한성판윤·형조판서·예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이 사람은: 서울로 돌아갈 때 그가 가장 앞세운 짐은 조상의 신주였다. 피란 내내 지켜 온 그것을 직접 모시고 도성에 들어갔다. 중신의 집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접대와 살림을 총괄한 사람도 그였다. 누가 다녀갔고 무엇을 대접했는지 목록까지 남아 이 일기는 17세기 사대부가 살림의 백과사전이 됐다. 1640년 8월 9일 일기가 멈춘다. 3년 10개월, 그의 나이 예순일곱이었다. 붓을 걸른 날은 피란 첫 며칠, 서울 귀환 직후의 일주일, 그리고 앓아누운 며칠뿐이다. 남은 것은 한글 필사본 한 책 일흔두 장.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가 됐다.
이 사건은 병자일기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