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후원 (돈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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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후원, 가는 길에 듣는 해설입니다.
창덕궁은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이 경복궁과 따로 지은 궁궐입니다. 처음에는 경복궁이 으뜸 궁궐이고 창덕궁은 그 곁의 궁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탔고, 전쟁이 끝난 뒤 가장 먼저 다시 지어진 곳이 창덕궁이었습니다. 경복궁은 그 뒤로 이백칠십 년 넘게 폐허로 남았고, 그동안 조선의 임금들은 이곳에서 살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다시 짓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광해군은 창덕궁을 다시 세운 데 그치지 않고 다른 궁궐들까지 새로 지었는데, 전쟁이 막 끝나 백성들이 지쳐 있던 때라 나라 살림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궁궐 한 채에도 그 시대 사람들의 땀과 한숨이 배어 있는 셈이지요.
창덕궁의 가장 큰 특징은 반듯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복궁은 정문에서 으뜸 건물까지 한 줄로 곧게 이어지지만,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을 앉혔습니다.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간 뒤 오른쪽으로 꺾어야 으뜸 건물이 나타납니다. 땅을 깎아 반듯하게 만들지 않고, 생긴 대로 두고 그 위에 집을 얹은 것이지요.
정문 돈화문은 지금 남아 있는 조선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입니다. 수리 중일 때는 옆문으로 드나들게 되니, 화면의 카드에서 한 번 확인해 주세요.
안으로 들어가 돌다리 금천교를 건너면 인정전이 나옵니다. 임금이 신하들의 인사를 받고 나라의 큰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문 안을 들여다보면 천장에 전등이 달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 때 고친 흔적입니다. 조선의 궁궐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이지요.
동쪽으로 더 가면 낙선재가 있습니다. 단청을 칠하지 않아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소박한 집입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사람들이 1989년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왕조는 끝났어도 삶은 이어졌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꼭 보셔야 할 곳, 후원입니다. 언덕과 골짜기를 거의 손대지 않고, 그 사이에 연못과 정자를 살짝 놓은 왕실 정원입니다. 반듯하게 다듬은 정원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숲인지 정원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창덕궁이 세계유산이 된 가장 큰 까닭도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네모난 연못 부용지 앞에 서서 언덕 위 주합루를 올려다보세요.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자리입니다.
후원은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와 함께 들어가고, 봄가을 주말에는 표가 금방 동납니다. 예약 방법은 화면의 카드에서 확인하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 보세요.
- 돈화문 — 창덕궁의 정문. 지금 남은 조선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해체 수리 중이라 가림막 너머로 본다
- 인정전 — 나라의 큰 의식을 치르던 정전. 안을 들여다보면 천장에 전등이 달려 있다. 대한제국 말 순종 때 고친 흔적이다
- 낙선재 —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집.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사람들이 1989년까지 여기서 살았다
- 후원 —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 연경당, 옥류천으로 이어지는 왕실 정원. 해설사를 따라 정해진 회차에만 들어가고, 시기에 따라 도는 길이 바뀐다
월요일 휴궁(공휴일이면 열고 다음 평일에 쉰다)
전각 만 25~64세 3,000원 · 만 24세 이하·65세 이상·한복 착용자 무료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무료 (2026년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무료로 넓힌다는 발표가 있었다 — 방문 전 확인)
후원은 따로 어른·경로 5,000원, 청소년 2,500원 · 전각 관람권도 함께 사야 한다 · 수요일 무료에서 빠진다
후원 예약: 회차당 100명 가운데 50명은 궁능유적본부 예매 누리집(ticket.uforus.co.kr)에서 관람일 6일 전 오전 10시부터 선착순, 나머지 50명은 당일 현장 판매 · 해설 70~9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