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장우중문시〉 — 칭찬의 형식을 빌린 조롱

612 7월 · 평양성 부근

평양에 닿은 별동대는 이미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이때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다섯 자 넉 줄의 시를 보냈다. 『삼국사기』 을지문덕 열전에 원문이 그대로 전한다.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꿰뚫었고 / 기묘한 셈은 땅의 이치를 다했도다 / 싸워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 만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극찬의 형식이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이길 만큼 이겼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라 — 굶주린 군대를 이끌고 성 앞에 선 장수에게 이보다 아픈 말은 없었다. 곧이어 고구려는 왕이 직접 황제를 찾아뵙겠다는 조건을 내밀었다. 철수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우문술은 그 명분을 잡았다. 이 시는 우리 문학사에 남은 가장 오래된 한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승패를 가른 무기가 칼이 아니라 넉 줄의 글이었던 셈이다.

이 사건은 살수대첩 루트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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