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헐지 말라 — 경계에 선 일본인들

1922 · 경성 광화문

그때 나라는: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앞마당에 들어서면서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 사람들은: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잡지에 「사라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라는 글을 실어 반대했다. 광화문은 헐리지 않고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졌다. 야나기는 2년 뒤 경복궁 안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열었고, 그 곁에는 조선의 소반과 도자기를 연구하던 아사카와 다쿠미가 있었다. 다쿠미는 조선에서 세상을 떠나 스스로 원한 대로 망우리에 묻혔다. 다만 야나기가 조선 미술을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본 시각은 식민지 사람을 가엾은 존재로 굳혔다는 비판을 함께 받는다. 이 루트는 그 둘을 모두 적고 시작한다.

이 사건은 흩어진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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