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상덕태상회를 세우다
의병장 허위의 문하에서 배우고 판사시험까지 합격했던 박상진이 판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구에 곡물상 "상덕태상회"를 세워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삼았다 — 상회·여관을 가장한 이런 거점은 이후 전국 8도로 확대되며 대한광복회의 연락망이 된다.
이 사건은 대구경북 독립운동가 — "조선의 모스크바"의 시작 루트의 한 장면입니다.
의병장 허위의 문하에서 배우고 판사시험까지 합격했던 박상진이 판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구에 곡물상 "상덕태상회"를 세워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삼았다 — 상회·여관을 가장한 이런 거점은 이후 전국 8도로 확대되며 대한광복회의 연락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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